달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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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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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을 들으며
▲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경북도민일보] -폭력의 역사
불로장생을 꿈꾸는 왕이 있었다. 대륙을 지배하고도 성에 차지 않은 그는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하라 명했다. 대신들의 생식기를 자르고, 후궁을 들이고, 마을을 불태우고, 궁전을 세웠다. 유일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지구 건너편에서는 쇠붙이를 금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들은 근원 물질의 기초를 습득하면 만물의 형성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끝끝내 그들이 맞바꾼 건 금이 아닌 세월이었다. 자신의 신을 섬기지 않는 자를 죄로 여기는 시대도 있었다. 악이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사람을 불에 넣고 즐겼다. 피부가 녹는 사람을 보며 자부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었다. 거대한 전쟁도 있었지. 제 머리를 높이 치켜들기 위해 타자(他者)의 허리와 무릎을 짓밟아야 했다.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서로의 이념을 정복하기 위한 학살이 일어났다. 반성과 성찰 이후에도 인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호를 구실로 세운 식민의 시대도, 고문의 시대도, 입을 찢고 내장을 꺼내는 짐승의 시대도 있었다. 사람이 가득 찬 방에 가스를 채우는 시대가, 시민을 향해 총포를 날리던 시대가, 신을 과용해 테러를 저지르는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있다.
가라앉고 있는 배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던 시대가.

익명으로 회귀한 가면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광장은 사라지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와 게임만이 남았다. 세 가지의 쾌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가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가상 세계의 익명들은 정체 없는 시뮬라크르를 깃발 없는 노마드를 맥락 없는 정치 철학을 풀어내며 조롱의 메타포로 현실을 침범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시인이고, 시민이고, 시시포스였다. 그럼에도 제 몸을 치장하고 깎고 가꾸며 으스대는 이들의 속은 연두부처럼 말랑말랑했다. 속물과 동물 사이를 서성이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이 시대에서 누가 누구를 보호할 수 있을까. 백두대낮에 이유 없이 사람이 살해되는 무분별한 시대다. 무슨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음악을 쓸 수 있을까. 음악은 이 시대에서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는 무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현실적인 세계의 나날들
밥 웰치와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킹 크림슨과 고전 샹송으로 맞이한 주말이었다. 해는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고 선명하게 빛났다. 더없이 화창한 날씨와 몇몇 절망적인 기사들로 맞이하는 우울한 감정 사이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를 꺼내들었다. 무슨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집중력 높은 사운드에 현기증이 일었다. 자명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메트로놈이 색을 감추지 않은 채 긴장을 유발하고, 딜레이 이팩트 속에서 동전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프리즘이 세상을 뚫고 빛을 퍼트렸다. 이미지를 소리로 변형하려는 실험적인 사운드가 머릿속을 뒤집어놓았다. 재즈도 트롯도 디스코도 록도 있었다. 이 진보적인 음악에 잠시 나를 맡겨보았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이어오던 편두통은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청년의 무자비한 살해 기사를 찾아 읽고 또 읽던 밤을 보낸 후였다. 평범한 청년의 죽음은 비현실적이었음으로 그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역시 비현실적이었다. 오히려 내 속을 복잡하게 만든 요인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 그리고 이내 면역처럼 길들여져 되찾게 될 일상의 평범함이었다. 나는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그 자명한 사실이 혈관 속에 든 바늘처럼 몸 속 어딘가를 할퀴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가진 숨을 힘겹게 내쉬는 육식 동물의 최후처럼 밴드의 사운드는 무겁고 처절하다. 돌연한 소리들이 삽입되지만 결코 복잡하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그것은 철저하게 이면을 탐구하려는 정신의 한 과정이다. Pink Floyd의 목표는 달 이면의 어둠을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 하려는 것이다. 실패와 실존 사이의 고민이 세계와 나 사이에 거대하게 자리한 부조리의 공간을 수긍하게 만든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깊은 외로움 속 어떤 대상, 나 일지도, 당신일지도 모르는 이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아프다. 어느 음악보다 냉소적인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다친 것은 타자인데 위로 받으려 애쓰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당신이 만지는 모든 것, 당신이 보는 모든 것, 당신이 맛보는 모든 것,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 당신이 사랑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을 이들은 노래한다. 달의 어두운 면이란 없다. 사실 그건 전체가 모두 다 어두운 것이다. 이들의 철학을 인정하지만 오늘은 이 음악이 싫다. 음악이 싫다. 스스로를 구하려는 모든 목소리를 오늘만은 허락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턴테이블을 정지시킨다. 음악이 멈추자 깊은 공백이 찾아온다. 아직 밖은 화창한 낮이다. 나는 또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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