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전쟁을 준비하라
  • 뉴스1
표준전쟁을 준비하라
  • 뉴스1
  • 승인 2018.1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장

[경북도민일보 = 뉴스1]  영어권에서 흔히 쓰는 전화 인사말인 ‘헬로(Hello)’를 대중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토마스 에디슨이다. 그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한 전화기의 시연 장면을 보고 놀라 헐로(Hullo)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뒤 전화 사업을 시작하려는 친구에게 전화 통화의 인사말로 헬로를 권장했고 이로부터 전화 인사말의 표준은 헬로가 되었다. 그 뒤 벨은 헬로 대신 뱃사람이 사용하던 ‘어호이(ahoy)’를 제안했지만 세상은 이미 헬로로 수렴된 후였다. 전화 인사말에 관한 표준전쟁의 승자는 에디슨이었다.
 사전을 뒤적이면 표준(標準)이란 사물의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이라 한다. 그렇다면 통일의 과정과 통일된 코리아를 만들어가는 것도 결국 남과 북이 하나의 근거와 기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 즉 하나의 표준을 가지고 사는 준비를 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표준화가 통일의 과정에서 중요한지 질문해 보자.
 첫째는 산업기술의 표준화이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산업과 기술은 매우 달라졌다. 한 예로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인 남북철도를 보자. 철도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남북 간 철도연결을 위해서는 선로등급, 구조물, 전철 전력기준 그리고 철도 궤도의 폭까지 전 분야에 걸쳐 표준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표준화인가이다. 철도 궤도의 폭만 하더라도 광궤, 표준궤, 협궤가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과 기술은 이미 고도화되었으니 결국 표준화는 북한이 우리 기준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선이고 북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우리의 근거 없는 믿음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북한이 꼭 대한민국 산업기술 기준을 따라야 할 의무도 인센티브도 없다. 어쩌면 막대한 개발자금을 미끼로 자국의 산업기술 표준을 채택하라는 주변국들의 권유에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둘째는, 제도와 법령 등 소위 거버넌스 시스템의 표준이다. 진시황이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비결이 무엇일까? 교과서적 답변은 강한 왕권과 필승의 각오와 실용주의로 준비된 강력한 군사력이다. 하지만 진시황이 중국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꿔놓은 핵심에는 표준통일이 있었다. 먼저 군사체제를 표준화해 대륙을 통일한 후 문자와 도량형, 법률, 행정조직 등 국가 전반에 걸쳐 거버넌스 시스템 표준을 최초로 적용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대륙통일이 완성되었다.
 철도, 항만, 에너지 등 인프라 투자에 특화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부총재인 요아킴도 제도와 법령의 정비 없는 인프라 투자는 단순 낭비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 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남과 북의 거버넌스 시스템의 표준화는 산업기술 표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민감하다. 남과 북의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필수적이며 그 과정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도 현재의 거버넌스 시스템을 수정 보완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의 표준화이다. 보편적 가치는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다. 마르크스는 물질이 정신을 규정한다고 했지만 삶을 살아보면 정신이 물질을 규정하는 경우가 더 많음을 경험한다. 따라서 남과 북이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면서 산업기술 표준화와 거버넌스 시스템 표준화만 이루고 보편적 가치에 대한 표준화를 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보편적 가치의 진정한 표준화는 헌법의 문구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그 산증인이다.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책임, 세계시민주의와 민족주의 등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가치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드느냐는 소수의 전문가가 아닌 남북 주민 모두의 집단지성만이 풀 수 있는 과제다. 상대방의 삶의 기준과 원칙들을 이해하고 이들을 아우르는 가치체계를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통일로 가는 길은 결국 표준을 향한 여정이다. 아무리 남북을 하나의 나라로 물리적 용접을 해도 남북이 보유하는 가치가 다르고 사회를 운영하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다르고 산업과 경제를 운영하는 기준이 다르면 아니하는만 못한 통일이다.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다. 단순히 북한이 남한의 표준을 따를 것이라고 믿으면 반드시 낭패를 볼 것이다. 하나로 합하려는 중력보다 둘을 분리하려는 원심력이 팽팽히 맞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시작될 표준전쟁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는 에디슨이 될까 벨이 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