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긴급출동’ 사건의 전말(顚末)
  • 모용복기자
‘자동차 긴급출동’ 사건의 전말(顚末)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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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며칠 전 주말을 맞아 늦가을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도 볼 겸 가족나들이를 나섰다. 가을 끝자락에 접어든 산과 들은 아직 형형색색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점심시간도 지난 늦은 나들이여서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교외를 목적지로 하고 수 십분 차를 달려 들녘 풍광이 좋은 한 조용한 마을에 닿았다. 집집마다 까치밥나무처럼 팔을 벌리고 선 감나무와 멀리 산들의 단풍이 그려내는 풍경화에 이끌려 넋을 놓고 한참을 가다 보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농로(農路)처럼 좁은 시멘트 길에 좌우에 차를 돌릴 공간도 없어 하는 수 없이 후진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다 한쪽 차바퀴가 그만 도로 밖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그 때까지는 괜찮았다. 아내의 잔소리와 아이의 불평도 가을바람에 날려 보내 버렸다. 이제 보험사에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몇 분 후에 견인차가 잽싸게 달려와서 차를 건져줄 테고 우리는 가을날 남은 오후의 일정을 계획대로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여보세요 거기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보험사에 전화한 후 수 분 뒤에 걸려온 견인차 기사의 목소리는 첫 귀에도 짜증 섞인 말투였다.
“아 예, 여기…”
“아 됐구요. 문자로 넣어줘요”
자기가 물어놓고 정작 대답하려니 말을 딱 잘라버리는 건 무슨 경우인가. 잠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주말이라서 쉬는데 방해해서 그런가’ 생각하니 그냥 넘어가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견인차는 예정시간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견인차 기사의 얼굴은 말투와 똑같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살짝 심통이 발동한 나도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그의 견인방법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 몇 분을 옥신각신하다 보니 그가 왜 그토록 불만을 가졌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오지(奧地)까지 와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내가 쓸데없는 소리로 자신을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자기가 아니면 여기까지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도 했다. 결국 내가 너무 먼 거리에서 사고를 내 보험사에 사고접수를 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먼 거리가 문제라면 보험료를 더 내면서까지 가입한 긴급출동 서비스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카센터가 없는 외곽지에서 사고나 고장이 날 때 더 필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그들이 왜 교외지역에 출동하기를 꺼려하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카센터는 보통 보험사로부터 출동 건수 당 일정금액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 그런데 거리가 멀면 시간과 기름값이 많이 들어 별로 남는 게 없어 출동하기를 꺼린다는 설명이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도 고객에게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카센터가 아닌 보험사에 보험을 들었으며 지역에 관계없이 친절하게 서비스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카센터는 그들의 고충을 고객이 아닌 보험사에 표출해야 한다. 만약 계약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시정을 요구하든지 그도 안 되면 계약을 해지할 일이지 고객에게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떠넘길 일이 아니지 않은가.
불편한 마음으로 서로 엇박자를 내다보니 차는 예상보다 늦게 어렵사리 올라왔다. 그래도 차를 건졌다는 안도의 마음에 멋쩍게 인사를 건네는 내게 그는 눈길 한 번 안주고 휑하니 떠나버렸다. 빛의 속도로 내닫는 견인차 꽁무니를 보니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내가 조금 심했나?’라는 자책과 함께 ‘괜히 인사를 했다’는 후회마저 밀려왔다. 아내는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랬으면 옥신각신 다툴 일이 없었을 것이며 차도 더 빨리 건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좁은 길에는 차를 진입시키지 말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가을에는 노을도 단풍이 드는지 저녁나절 하늘은 유난히 붉은 빛을 토한다. 붉은 산 붉은 노을, 내 마음에도 온통 붉은 빛이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일어난 사고와 견인차 기사와의 언쟁사건, 아내의 충고를 생각하니 입맛이 씁쓸했다.
나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조금 다혈질인 성격이라 평소 후회할 일을 많이 만든다. 그래도 오십이 넘도록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랄 수밖에. 그건 순전히 절반은 운(運)이요, 절반은 아내의 잔소리 덕택이 아닌가 싶다.
요즘 나처럼 다혈질인 사람들이 ‘욱’하는 성질을 못 참고 저지르는 강력범죄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PC방 종업원이 불친절하게 대했다며 잔인하게 살해하고 편의점 직원이 무시한다고 여겨 불을 지르는가 하면 폐지를 줍는 아주머니를 아무 이유 없이 무참히 폭행해 숨지게 하는 등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고 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자기 성질나는 대로 행동을 한 결과 이처럼 참혹한 일이 빚어진 것이다.
분노는 사람이나 사물이든 현재의 상태가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생긴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거나 손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경우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내 기대에 부합하는 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겠는가. 정치든 경제든 다 안 좋은 얘기들 뿐이다. 전부 제 살기 바빠 죽을 지경인 세상에 나를 배려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러니 애당초 타인에 대해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고 나아가 패가망신을 면하는 지름길이다.
“화를 1분 경험할 때마다 60초의 행복을 잃게 된다”는 어느 미국 사상가의 말장난 같은 말도 새겨볼 만한 요즘이 아닌가. 그날 내가 잃은 행복은 몇 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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