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과 폐지(廢紙)
  • 모용복기자
패딩과 폐지(廢紙)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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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겨울 외투인 패딩점퍼가 오히려 전 국민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한 일이 있었으니, 또래 학생을 폭행해 숨지게 한 가해자가 입고 있던 옷이 피해자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전 국민을 경악케 한 것이다.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이 패딩점퍼에서 악마(惡魔)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3일 오후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는 어린 학생들의 행동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중학생 4명이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온 동급생을 1시간이 훨씬 넘도록 폭행을 가해 피해학생이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추락해 숨지게 한 것이다.
가해자들은 경찰조사에서 피해학생이 스스로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도 이들의 증언과 국과수의 소견을 바탕으로 옥상에서 추락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잔인성과 악랄함, 주도면밀한 증언을 놓고 볼 때 이들이 사전에 입을 맞췄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먼저 가해자들이 피해학생을 때려 숨지게 한 후 옥상에서 떨어뜨려 추락사한 것으로 위장했을 수 있다. 피해학생을 맨 먼저 발견한 경비원의 ‘몸이 얼음장 같았다’는 증언은 이미 이 학생이 옥상에서 추락하기 전 사망했음을 시사한다. 설령 가해자들의 증언대로 추락사했다 손치더라도 폭행과정에서 피해학생이 불가항력적으로 떨어졌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조사해 봐야 한다.
가해자들의 잔인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이들은 피해학생이 숨진 당일 새벽에도 집단폭행을 했다. 피해학생 어머니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새벽 공원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도 무릎을 꿇린 채 피가 날 정도로 폭행을 했다. 그리고 피 묻은 옷을 벗겨서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다. 가해자들은 평소에도 친구처럼 집에 놀러와서는 피해학생 어머니가 배달시킨 피자, 치킨 등을 못 먹게 하고 자기네들끼리만 먹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어머니가 퇴근해 집에 와보니 가해자들은 침대에서 자고 피해학생은 베개도 없이 맨바닥에서 자게 하는 등 오랫동안 학대가 있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또래학생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보다 더욱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름끼치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가해학생 중 한 명이 자신이 숨지게 만든 학생의 패딩점퍼를 버젓이 입고 법원에 출두한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이 모습을 본 어머니가 경악을 금치 못했음은 물론이다. 어머니는 SNS에서 “내 아들을 죽인 살인범” “저 패딩도 내 아들의 옷”이라며 피 토하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마도 피해학생으로부터 강탈한 옷을 숨지기 전부터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피해자와 교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자행한 끔찍한 행위를 볼 때 그의 말은 단 1퍼센트도 믿을 게 못 된다. 그는 마치 전리품인 마냥 점퍼를 걸치고 있었겠지만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결정적인 증거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점퍼를 빼앗은 사실이 확인되면 강도죄 혐의도 추가 될 수 있다.
이번 인천 중학생 폭행 사망사건으로 또다시 ‘소년법 폐지’ 요구가 비등하고 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 폐지와 함께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청원인은 “청소년은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며 “많은 청소년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자신의 지인이 피해자가 될지 가해자가 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제 국민들은 성인들 뺨치는 10대들의 흉포한 폭력성에 치를 떨고 있다. 더 이상 소년법이라는 울타리로 이들을 감싸 안기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10대들의 잔혹함에 치를 떨며 내 자식이 살아내야 할 미래 우리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을 때 어둠 속 한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폐지를 정리하고 있던 70대 할머니가 술에 취한 20대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 당하는 것을 본 고등학생들이 이를 제지해 할머니를 구했다는 뉴스였다. 만약 학생들이 아니었으면 할머니가 얼마나 큰 화를 당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사건은 지난달 거제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새벽 무렵 선착장에서 폐지를 줍고 있던 50대 여성이 만취한 20대 남성으로부터 끔찍한 폭행을 당해 숨진 비극적인 사건과 판박이다. 다만 이 아주머니는 도움의 손길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이 학생들의 활약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이들 고교생 3명은 자신들이 구해준 할머니를 만난 자리에서(할머니가 폭행 당하는 모습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며 “다시 이런 일이 반복돼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폭행을 한 중학생과 폭행을 막은 고교생들. 오늘날 우리사회 10대들의 두 모습을 보며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숨진 중학생 어머니가 SNS를 통해 “안타까운 마음을 보내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한대로 아직 우리사회 대다수의 국민들과 청소년들은 따뜻한 마음을 품은 의로운 사람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버섯이 요즘 들어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학교 폭력, 나아가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폭력의 독버섯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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