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윈스턴의 ‘December’ 들으며
[경북도민일보] -December
12월이 되기를 기다렸다 조지 윈스턴을 꺼내어 듣는다. ‘December’라는 앨범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다. 해가 높거나 잎이 푸르거나 바람이 따스한 날에는 아무래도 이 앨범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어떤 음악에는 정확한 계절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앨범의 재킷에 설원이 펼쳐져 있다. 누구도 오가지 않는 눈밭에 나무 네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사진은 희고, 푸르고, 희미하게 붉고, 또한 짙다. 수평선처럼 뻗은 설원과 하늘로 우뚝 솟은 나무는 묘한 비대칭으로 긴장을 자아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각의 프레임 바깥을 꿈꾸고 있기에 보다 희망찬 느낌마저 감돈다. 폭신할 것 같은 눈과 고유의 색을 간직한 나무는 겨울은 결코 제자리에 멈춰있지 않다고 말한다. 다음에 올 계절을 강렬하게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사진 속 설원에는 발자국도, 흔적도, 기척이나 징조도 없다. 이 고요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누구도 섬처럼 외따로이 자라난 이 나무들을 방해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이 앨범을 통해 머나먼 이국의 겨울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고 듣고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셈이다.
-Variations On The Kanon By Johann Pachelbel
어떤 음악은 시간을 초월해 우리 앞에 도착한다. 17세기 독일 바로크 음악가 요한 파헬벨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은 <캐논과 지그 D장조>이다. 창작자는 죽어 사라져버리지만 그가 영혼을 담은 이 음악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몇 세기를 거쳐 많은 음악가에 의해 재창조되더니 한반도의 끝, 영도라는 섬에서 태어난 한 소년에게도 계이름을 호명당하는 것이다. 주제 음을 모방하며 되풀이하는 이 도돌이표 연주에는 재생(再生)의 꿈이 담겨 있다. 과거를 되살려 내며 화음을 긍정하는 이 연주에는 희망의 기운이 잠재되어 있다. 어쩌면 그가 앨범의 제목을 ‘12월’이라 붙인 까닭은 순환의 끝에 선 겨울의 이미지만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곡의 러닝타임인 5분 21초가 지나면 하루가 끝이 나고, 우리 모두의 시계는 0으로 돌아간다.
-정확하고 정중한 마음을 담아
조지 윈스턴의 가쁘지 않은 호흡과 섬세한 연주가 우리를 심연의 끝으로 밀어 넣는다. 그의 연주가 있다면 이 겨울에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Thanksgiving’, ‘Joy’, ‘Peace’ 등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명곡들이 아직 계절을 감각하지 못한 이들의 LP보관함 속에 고스란히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 중 몇 명만이라도 이 앨범을 꺼내어 재생하길 부탁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네 마음 한 구석에 잠들어 있던 순수를 발견하는 일이며, 병마와 싸우는 조지 윈스턴을 82년도의 건재한 모습으로 되살려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신에게 바치는 고백과 연인에게 보내는 사랑과 관객을 향한 감사가 조지 윈스턴의 가늘고 긴 손끝에 담겨있다. 보다 정확하고 정중한 마음을 담아. 이 계절이 바뀐다면 나는 장롱 속에 겨울코트를 넣어놓듯이 이 앨범을 책장 깊숙한 곳에 꽂아둘 것이다.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솔로 앨범 ‘December‘는 단지 겨울에만 유효한 것이나, 겨울은 제자리를 향해 돌아올 것이니. 기꺼이 12월을 맞이할 이보다 좋은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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