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디에 두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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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디에 두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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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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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경북도민일보 = 뉴스1] 중국 진나라 재상이었던 이사(李斯)는 두 마리 쥐를 보고 인생 행로를 결정합니다. 어느 날 변소에 들어갔더니 쥐가 놀라서 도망을 갔는데, 다른 날 곳간에 들어갔더니 그 쥐는 살이 찐데다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겁도 내지 않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제서야 달아났습니다. 이사는 쥐조차도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처지가 다르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재소자처(在所自處), 즉 ‘있는 장소에 따라 운명이 다르다’는 유명한 말을 하게 되죠. 이 깨달음을 얻고 이사는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게 됩니다. 그는 진나라에서 22년 동안 권세를 누립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스위스 버스 기사는 우리나라 운전자보다 운전을 못하는데도 월급을 많이 받습니다. 40대 초반에 동료들과 함께 나이트란 곳에 가봤습니다. 부킹도 못하고 모두 퇴짜맞았는데요, 그 세계는 어떤 회사의 어떤 위치이냐가 소용 없습니다. 그냥 와서 보고 이야기해 보고 아니면 끝입니다. 스펙은 관계 없고 액면으로 결정되는 곳이었습니다. 머리숱이 적은 동료는 열받는다고 먼저 가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은 퇴직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된 직장에 있을 때와 퇴직 후 재취업했을 때의 소득이 너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돈 벌려고 이 일을 하겠냐’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가 평가하는 가치가 차이 나는 ‘가치의 괴리’가 일어나는 거죠. 통계청 조사를 보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해서 다른 직장으로 옮길 때 소득이 절반 정도 떨어지고 60대 중반을 넘어서면 거기서 또 절반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두 75% 정도 떨어지는 셈입니다.
왜 그럴까요? 직장에 있을 때는 회사라는 조직의 생산성이 개인의 노동생산성을 높여 줍니다. 조직이 효율적일수록 생산성도 높아서 월급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이런 회사에 들어가려고 경쟁이 치열한 것입니다. 조직에서 자신이 받던 월급을 오롯이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어떤 사람이 ‘갑’ 위치에 있는 직장에 다닐 때 강의 의뢰가 많아서 퇴직하면 강의로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퇴직하고 조금 지나자 강의 의뢰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큰 조직일수록 일이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보니 그 조직을 나가면 가치가 사라집니다. 마치 완성된 레고 제품에서의 레고가 아닌 하나만 떨어져 나온 레고 조각 신세가 되어버린 거죠. 재취업을 하려 해도 자신의 레고 조각이 잘 맞는 조직이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위치만 달라졌는데 가치가 확 달라져버린 것입니다.
노후에 일을 할 때는 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세 가지 정도를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전문성과 기술에 나를 두어야 합니다. 퇴직한 분들의 재취업 사례를 들어 보면 기술이 있는 사람은 쉽게 자리를 구합니다. 그래서 생산직에서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퇴직을 하고도 다시 그 직장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10년 정도 전에 선배님 한 분은 목공일을 배워 성공했습니다. 원자력 박사이면서 기타 만드는 기술을 배운 분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평생 일할 걸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가 매겨주는 가치의 괴리가 큰 사람들이 관리직입니다. 큰 조직에서는 관리가 필요하지만 퇴직 후 큰 조직에 들어가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좁은 문에 나를 두십시오. 들어가기 어려운 곳은 일단 들어가고 나면 넓은 길이 있지만, 누구나 들어가는 넓은 문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제 친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50대 중반 나이에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또 다른 지인은 50대 초반에 직장을 나와서 한국 폴리텍 대학에 들어가 일반인도 아닌 젊은 사람들과 같이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손해사정인 자격증을 따서 요즘은 자동차 사고 관련 손해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을 택했기에 넓은 길이 펼쳐진 것입니다. 누구나 딸 수 있는 자격증은 가치가 크지 않습니다. 몇 년을 더 투자하더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작은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셋째, 새로운 곳에 나를 놓아 두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대부분은 평생 배운 직장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합니다.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지요. 물론 이 길이 좋습니다만 직장을 다닌 분들은 생각만큼 경력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예 다른 길을 택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의외로 퇴직 전의 일과 관계 없는 다른 일을 택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위에 예를 든 분들도 이전 직장과는 관계 없는 일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이전의 경험이 모두 쓰인다고 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융합 효과가 나타나는 거죠.
일은 음양오행에서 토(土)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토는 오행 중에 양(陽)적인 측면과 음(陰)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면서 목화금수를 아우릅니다. 이들을 어울리게 하고 소통하게 해줍니다. 노후에 중요한 다섯 가지가 돈, 건강, 일, 관계, 의미인데 일은 돈, 건강, 관계, 의미와 모두 소통하고, 이 네 가지의 토대가 된다 할 수 있습니다. 일이 있으면 돈이 생깁니다. 일을 하면 건강해집니다. 일은 관계의 토대가 되기도 하고 의미를 찾아줍니다. 노후의 일은 삶의 대지(大地)와 같습니다. 대지는 우리에게 도전도 주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곳에 서 있는 게 중요합니다. 노후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기술, 좁은 문, 새로운 일’에 나를 둘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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