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남행열차’ 통일驛으로 향하게 하라
  • 모용복기자
‘김정은의 남행열차’ 통일驛으로 향하게 하라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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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온다 안 온다, 와야 한다 오면 안 된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다름 아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答訪)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다.
최근엔 북한 개성 인근에서 헬기로 추정되는 비행체 2대가 전술조치선(TAL) 근처인 남쪽까지 내려온 것을 놓고 김 위원장 답방(答訪)을 앞두고 선발대 성격으로 남쪽지역을 살피고 돌아간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추측과 억측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문은 감감무소식이며, 사실상 연내 물 건너 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청와대도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어려울 것이라 보고 내년 초 북미정상회담 이전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는 전언(傳言)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 논란을 보며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민족의 서글픈 숙명(宿命)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한은 사실 예전에도 한 번 성사될 뻔 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평양에서 열린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 평양 방문에 대한 화답의 의미로 한국 방문을 약속했다. 실제로 정상회담 직후인 그 해 9월 대남 담당 비서였던 김용순이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해 남측의 주요 도시와 시설들을 답사하고 돌아가는 등 답방준비를 서둘기도 했지만 끝내 김정일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갓 취임한 아들 부시 대통령의 대북강경책 선회로 인한 북미관계 악화와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란 게 중론(衆論)이었다. 그의 방한이 북한에 전혀 유리할 게 없다는 계산표가 나온 것이다.
또한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서울 방문을 공식 요청했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1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대통령이 세 번 평양을 방문했지만 북한 최고지도자는 아직까지 한 번도 남쪽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과거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최대 걸림돌이었던 북미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다. 비록 현재 비핵화협상이 다소 교착상태이긴 하지만 물밑에선 워킹그룹이 여전히 활발한 접촉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미 6월 한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내년 초에 2차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는 상태다. 그러니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관계를 이유로 남측을 찾지 않을 가능성은 적다.
그러면 결국 김정은이 방남을 놓고 내적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 내 사정을 감안한 때문으로 보는 게 맞다. 방남을 통해 우리정부로부터 얻게 될 이득은 무엇인지, 한국 내 보수단체의 반대시위로 인해 그의 존엄이 북한주민들로부터 훼손되지나 않을지 등등을 고민하며 열심히 주판(珠板)을 튕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 입장에선 남쪽 주민들 모두 쌍수(雙手)를 들고 환영해도 갈까 말까 한 판에 혹시 자기 얼굴사진이 땅에 내동댕이처져 발에 밟히고 화형식이라도 당하는 날엔 할아버지 때부터 삼대(三代)를 이어온 철옹성(鐵甕城) 같던 백두혈통 집안이 거덜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남쪽 보수단체에서 김정은 방남에 대해 반대집회와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잇따라 강경입장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그를 뜨끔하게 했음이 분명하다. 이들은 한국전쟁,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판문점 도끼 만행,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 등 과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자행해온 수많은 만행에 대한 사과와 비핵화에 대한 선결조치가 없는 한 김 위원장의 방남은 있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김정은 방문 시 실제로 행동도 불사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동안 숱하게 당하고만 살아온 우리 입장에선 충분히 공분(公憤)이 가는 주장이지만 과거사에 대해 우방(友邦)인 일본의 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한 우리가 70년 넘게 적대관계를 이어온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어쩌면 북쪽의 최고지도자를 내려오게 해서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남쪽의 주민들과 대면하게 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와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백 마디 천 마디 사과보다 더 나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전 공사의 말은 곱씹을 만하다. 태 전 공사는 지난 5일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을 꼭 실현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학습시키는 기회로 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은의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그가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비핵화 문제는 연계하지 말 것도 강조했다. 누구보다 독재국가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아픔을 겪었으며, 북한정권을 향해 비난 화살 쏘기를 마다하지 않은 장본인이기에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어느 지역에선 농민들이 볏짚으로된 ‘곤포 사일리지’에 김 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는 내용의 문구를 새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환영. 대북제재 해제, 통일농업 실현’이라고 적혀 있다. 그의 방문이 통일농업 실현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차농법(農法)이 아닌가 싶다. 또 진보단체로 구성된 백두칭송위원회는 지난 주말 김 위원장의 방남을 염원하는 집회를 열어 ‘방탄소년단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백배 천배 더 좋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키자’라고 구호를 외쳤다. 김정은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두고 뭐라 말할 바는 아니지만 상식을 넘어선 맹목적인 추종은 국론(國論)을 분열시키고 국민들의 심기만 불편하게 할 뿐이다.
이처럼 일부의 지나친 환영 제스처도 문제지만 미래를 담보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반대와 비난 역시 통일한국으로 가는데 장애물이 될 뿐이다. 김 위원장이 오는 것과 안 오는 것, 과연 어느 쪽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냉철한 가슴으로 성찰해 봐야 한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역사는 부침(浮沈)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18년 전 그 때가 다시 우리 앞에 도래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18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근시안(近視眼)적 사고와 섣부른 감정표출이 대사(大事)를 그르칠 수 있음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할 것은 무엇이며 잃을 것은 무엇인가. 김정은 위원장의 남행열차는 반드시 기적(汽笛)을 울려야 한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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