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펜션참사 대책 조급증 걸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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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펜션참사 대책 조급증 걸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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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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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인명참사에 대한민국이 또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지난 21일, 강릉 펜션으로 우정여행을 떠났다 불의의 사고로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대성고 학생 3명의 발인식이 거행됐다. 이날은 지난해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경찰과 한국가스안전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은 펜션 베란다에 설치돼있던 보일러 시설의 배관 연결부 문제로 일산화탄소가 유출된 것에 의한 사고로 잠정 결론 내리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고가 난 민박은 올해 7월 농어촌민박업으로 등록해 정기점검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허술한 제도가 초래한 또 하나의 인재(人災)로 기록될 전망이다.
사고가 나자 정부 부처는 일제히 법을 뜯어고친다, 안전점검을 강화한다는 등 호들갑이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어촌민박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며 사고발생 하루 만에 농어촌민박을 포함한 농촌관광시설 안전관리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일산화탄소(CO)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 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뒷북행정이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이 전국 농어촌 민박 2만1701개 운영실태를 전수조사해 5772건의 위법사항을 적발한 것이 지난 6월 말이다. 전체 3분의 1에 육박하는 시설에 대해 위법사항을 적발하고도 6개월이나 되도록 잠잠하다가 막상 사고가 터지고 나니 앞뒤 가리지 않고 부랴부랴 대책을 쏟아내는 모습이 영 미덥지 않다.

더욱이 이 와중에 교육부가 보인 대책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희생학생들의 입관식이 있던 날 분향소를 찾은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유족을 향해 “자신에게도 또래 아이가 있다”며 눈물을 쏟았다. 유 장관은 사고 발생 다음날 대책마련 차원에서 고등학교 체험학습 현황을 전수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부는 지난 19일 각 시·도교육청에 관할 고등학교 3학년 학급의 개인 체험학습 현황을 파악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이에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대해 20일까지 현황자료를 제출할 것을 통보했다. 군대조직도 아니고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가 어떻게 하루 이틀 사이에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일을 진행할 수 있나. 또래 아이를 가진 어머니로서 동변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느낀 유 장관의 과욕(過慾)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 하루도 안되는 시간에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은 교사들에게 수업에 손을 놓아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교사들은 이번 사고의 원인이 펜션의 안전시설 미비로 인한 것인데도 교육부가 마치 학교와 교사들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사고를 겪은 대성고에까지 자료제출을 요구했다니 황망(慌忙)한 교사들이 자료를 만들 정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교육부가 대책을 서두르는 이유는 학부모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업과 대학 입시 업무에 눈코 뜰 새 없는 교사들에게 덮어놓고 현황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길 뿐더러 실제 근본적인 대책마련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체험학습 현황을 파악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차라리 현황파악보다 촌각을 다퉈 일선 학교에 사고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내려보내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이번 펜션사고를 통해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 부처의 조급하고 근시안적인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리 급하다고 이렇게 서둘러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국민의 눈치를 보고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진정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국민의 질책이 따끔하더라도 그 길로 가는 게 맞다, 촛불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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