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해요, 당신’
  • 이경관기자
연극 ‘사랑해요, 당신’
  • 이경관기자
  • 승인 2018.1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관 기자의 공연산책
▲ 연극 ‘사랑해요, 당신’ 중 한 장면. 사진=포항문화재단 제공
▲ 이경관 기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버틴 우리네 부모들에게 “수고했다” 보내는 따뜻한 인사가 포항시청 대잠홀을 가득 채웠다.
 포항문화재단은 지난 29일 오후 2시와 5시 2차례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올렸다. 2회 공연동안 800여명이 넘는 포항시민들이 공연장을 찾아,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관람하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두 번째 공연을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이번 공연에는 부모님과 함께 찾은 가족단위 관람객들과 부부 관람객이 많이 찾은 모습이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티켓을 찾고,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공연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오후 5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배우 김신우가 무대에 올라, 연극 관람매너와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대한 소개를 하고 내려갔다. 배우 김신우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점쟁이와 의사 등 여러 역을 소화하며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여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극 분위기를 조금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같이 미소짓는 그대가 보여요. 아무도 모르는 수줍은 들꽃처럼.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보다 눈부신. 그대의 기억을 놓지 않을래요”(옥상달빛 ‘들꽃처럼’ 中) 화려하지 않고 소박해 더욱 아름다운 들꽃처럼, 세월에 농익은 늙은부부의 하루가 무대 위 담담하게 흘렀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의 주인공 아내 주윤애 역을 맡은 배우 오미연과 남편 한상우 역을 맡은 배우 장용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 부부는 40여년 세월 함께 살았지만, 서로에게 표현하는 방법은 여전히 서툴기만했다. 늘 가정보다는 일이 먼저였던 책임감 강한 ‘상우’와, ‘나’라는 존재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산 ‘윤애’는 평범한 우리들의 엄마와 아빠 같았다.
 극의 첫 장면은 전직 교사로 퇴임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상우와 직장과 집만 오가며 감정표현에 인색한 남편 상우와 미국으로 떠난 자식들로 외로운 윤애의 일상이 그려졌다. 국내 대표 명품배우 장용과 오미연은 그 어느 집에서나 흔히 일어날법한 장면을 그들만의 색깔로 그려냈다. 윤애는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고, 상우는 먹을 시간이 없다며 퉁퉁 거린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단 둘이 살던 이들에게 오랜만에 아들 ‘종대’가 찾아온다. 그러나 종대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틈만나면 세상을 떠난 누나 ‘선영’의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에게 질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난다. 윤애는 계속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지만 상우는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들은 척도 않는다.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이들 가족의 모습은 마치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네 가족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예전엔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윤애’의 대사 中)
 그러던 어느 날 윤애는 자신이 무얼 만들려고 했는지, 방금 상우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깜빡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시장에 갔다가 집이 기억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윤애는 퇴근한 상우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꺼이꺼이 운다. 윤애와 상우는 함께 간 병원에서 치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늘 건강한 모습일 것 같던 아내가 아이처럼 변해가는 모습이 상우게게는 큰 충격이다.
 배우 오미연은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시대의 어머니를 대변하며, 자신보다는 언제나 남편과 자식이 먼저였던,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한다. 그런 그녀가 치매가 오자, 어린 아이처럼 변하고 어느새 아이가 된 그녀를 보며 관객들은 마치 우리들의 어머니게 온 불행처럼 가슴 먹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자신과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던 아내 윤애가 아이가 되자, 상우의 마음 역시 좋지 않다.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고, 옆집에 몰래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상우는 윤애가 그토록 원하던 여행 한 번 못가준게, 마음 다쳤을 때 보듬어주지 못하던게 생각나 스스로 자책한다. 과묵하고 언제나 표현에 인색했던 경상도 남자같은 상우의 모습은 어쩌면 가족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그것보다, 가족들을 먹여살릴 돈벌이에 급급했던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일 것이다.
 “나 네 엄마 없으면 못 산다.”(‘상우’의 대사 中)
 집안일에는 손도 까딱하지 않았던 상우는 윤애를 위해 부엌일을 하면서 아내를 돌본다. 약을 챙겨 먹이는데도 증상이 심해지는 윤애의 모습과 허리가 좋지 않은 아버지가 홀로 어머니를 간병하는 모습에 종태는 윤애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말한다. 그러나 상우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언성을 높이고, 종태 역시 쌓아온 불만을 터뜨린다. 사실 이 가족에게는 아픈 가족사가 있다. 결벽증이 있던 둘째 딸 ‘선영’이 상우의 제자 ‘현철’에게 성추행을 당한 충격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것. 윤애를 비롯한 가족들은 이를 평생 가슴속에 응어리로 안고 있었다. 윤애는 아이가 된 후부터, 계속 선영을 찾고, 그런 윤애를 보면서 상우의 마음도 아프다.
 “여보, 오랜 세월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소.”(‘상우’의 대사 中)
 서로 보듬지 못해 곪아버린 상처 앞에 가족들은 그 상처를 하나 둘 꺼내 서로 생채기를 낸다. 상처를 밖으로 꺼내자, 아비는 자식의 다친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고 자식의 아비의 넓고 큰 사랑을 깨닫는다. 윤애의 치매 앞에 상우와 종태는 비로소 화해를 하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상우의 사랑을 몰랐던 종태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상우는 자신에게 윤애가 어떤 의미인지 고백한다. ‘부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온전한 하나’임을.
 윤애는 아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준 상우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를 남기고 평생의 한이었던 둘째 딸 선영의 곁으로 떠난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은 일에 바빠 아내에게 진심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남편이 아내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1막이 단조로운 하루를 보내는 아내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2막은 상태가 악화된 아내의 애처로운 모습과 그 옆에서 서서히 작아지는 남편을 조명했다.
 단조로운 무대 위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윤애의 시선, 허리를 감싸 쥐며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 상우의 소리는 이들 배우였기에 가능했다.
 이날 연인과 함게 공연을 본 관객 김영민(33) 씨는 “연극을 보며 지금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낄 수 있었다”며 “명품배우들의 연기에 마음 깊은 울림을 가져간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는 조미숙(53) 씨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나셨다”며 “연극을 보니 홀로 남은 어머니가 얼마나 쓸쓸하셨을지 마음이 아팠다. 앞으로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