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己亥年)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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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己亥年)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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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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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경북도민일보]
미래는 주저하며 오지만 현재는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독일의 시인 실러의 말처럼 세월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의 거무죽죽한 목피에 돋아나는 연초록 새싹을 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찬탄하던 봄을 지나, 온 대지를   토닥이던 빗소리를 들으며 우수에 잠기던 그 여름밤을 건너, 바람결에 진눈깨비같이 낙엽이 휘날리던 거리를 상념에 젖어 하염없이 걷던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일출을 보려고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며 밤을 지새웠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것 같아 더는 견디지 못할 즈음에 쌀뜨물같은 부유스레한 여명이 밝아 올랐다.
일출의  풍경은 웅위하고 찬란했다. 밤새도록 모진 칼바람에 베인 상처로 선혈 뚝뚝 흘린 탓인가! 동녘바다 동녘하늘 붉어지고 헝클어진 머릿결같은 눈시린 후광 흩날리며 해가 솟아올랐다. 그 형형한 모습을 마주하며 이 한해는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리라” 고 얼마나 굳게 맹세했던가! 그러나 하루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맹세는 희미해지고 이내 허물어져 버렸다. 다짐한 것들을 지키고 실천하지 못했기에 해마다 늘 아쉬움이 가득한 것이리라.
물론, 연초에 세운 계획을 모두 달성하여 만족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만 어떻게 하면 소중한 시간들을 더 살뜰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미국의 토니 캄폴로 박사는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많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들의 대답은 의외로 한결같이 비슷했다. “날마다 반성하며 살겠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용서하며 살겠다. 죽은 후에도 기억될 만한 가치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 등의 대답이었다.

죽음 앞에 선 노인들의 답변을 종합해보면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했는가, 못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살아온 삶이 좋은 인생이었는지 나쁜 인생이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좋은 삶을 사는 비결은 우리가 여태까지 깨닫지 못한 어떤 심오한 삶의 철학이 아니었고, 배움이 많거나 적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많이 가졌거나 적게 가졌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그런 문제도  아니었다. 그 비결은 우리가 어려서 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가장 보편적이며 평범한 진리에 기저를 두고 있었다. 결국 그 보편적 타당성을 가진 평범한 진리를 지키며 살았는지, 못 지키며 살았는지가 좋은 인생이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결정짓는다는 것이었다.
지식의 홍수속에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진정 말하고 싶다. “작고 평범한 진리와 섭리에 충실하라. 그 충실이 진실하다면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또 한가지 중요한 대답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경전문 의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좋지 않았던 일들을 좋았던 일보다 훨씬 더 또렷하고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았던 일은 쉽게 망각하지만 상처를 받았던 일은  오랫동안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슬프거나 아프거나 또는 원한을 가진 과거에 매여 현재를 제대로 살지못하고 다가오는 미래도 미리  망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과거를 뒤돌아보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고 반성도 해야 된다. 하지만 지난 과거를 다시 살수 없고 다가올 미래를 미리 살수 없기에 사람이 충실해야 될 대상은 오직 현재밖에 없다. 과거에 매몰되어 있으면 현재 삶의 의욕을 무너뜨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게 만든다. 몇 달 혹은 일 년 후면 희미해지거나 다 잊어버릴 과거의 슬픔을 고무줄처럼 질질 늘이며 오늘을 살지 못하고 미래도 미리 파괴해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현재니라’란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늘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 하던 사람이 신께 기도를 올리다 쓴 산문시라고 한다. 
나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신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름은 현재니라” 그리고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제가 기다리자 신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실수와 후회로 얼룩진 과거에 매여 산다면, 네 인생은 힘들고도 몹시 괴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은 과거가 아니니라. 네가 미래에 닥칠 문제들 때문에 두려움을 가득 안고 산다면 네 인생은 역시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은 미래가 아니니라. 네가 현재 이 순간을 산다면 네 인생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은 현재니라” 올 한해는 지난 날들을 잊고 용서하고,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갈구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보통의 진리에 충실해보자. 미래를 알지 못해도 미래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함으로서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건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 기해년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의 만복을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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