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 걷기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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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 걷기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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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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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뉴스1]  중학교 1학년 때 창원에서 학교를 마치고 마산에 있는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운 없게도 전교 300명 남학생 중 1명 정도 배정되는 학교를 추첨받게 되어, 마산에서 창원까지 버스로 50분 걸리는 거리를 통학하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도 애는 집에 안 오고 학교에 전화하니 집으로 갔다고 하니 난리가 났습니다. ‘걸어서 얼마나 될까’라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게 5시간 이상 걸릴 줄 몰랐습니다. 걷기 유전자는 그때 싹을 보인 것 같습니다.
 최근 배우 하정우 씨가 매일 3만보를 걷는다는 책을 내고 그 이후 ‘두발 라이프’라는 걷기 모임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여기 출연하는 걷기 고수들은 하루 3만보 이상을 걷는 ‘걷기 마니아’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4년 동안의 평균 하루 걸음수가 1만1000 걸음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루 ‘평균’ 3만보를 걸으려면, 혹 하루 5000보를 걸으면 그다음 날은 5만5000보를 걸어야 합니다. 혹 이틀 모두 각 5000보만 걷게 되었다면 3일째는 8만보를 걸어야 되겠죠. 3만보는 고사하고 하루에 만보를 걷는다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전부터 걷는 걸 좋아했지만 체계적으로 제가 얼마 걷는지 몰랐습니다. 2015년에 휴대폰에서 걷기 앱을 발견하면서 매일 걷기를 체크했습니다. 하루 걸음수뿐 아니라 한달 평균, 1년 평균 걸음수를 알려주니 그 당시로서는 좋은 동반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막연하게 얼마를 걸었다는 생각만 하다가 직접 수치로 관리해보니 얼마나 엉터리 걷기를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4년 동안 체계적 걷기를 통해 얻은 경험을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수치로 관리해야 합니다. 앱을 이용해서 평균 걸음을 체크하고 데이터를 보관해두십시오. 저는 현재 1451일 동안 하루 평균 1만 1209걸음을, 거리로는 평균 8.4㎞를 걷고, 총 걸은 거리는 1만 2200㎞입니다. 지구의 적도 둘레가 4만㎞라고 하니 지구 둘레의 1/3을 걸은 셈입니다. 앞으로 8년을 더 걸으면 지구 한 바퀴 걷게 될 것 같습니다. 하루 걸음뿐 아니라 하루 중의 걸음, 한달 평균, 일년 평균 등의 데이터가 잘 나와야 하고 시각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한 달 동안의 걸음수를 막대 그래프로 보다 보니 평균 만보를 채우기 위해 밤 늦게 퇴근해도 다시 걸으러 나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치로 관리해야 만보 걷기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둘째,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마십시오. 하루 평균 만보 걷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책상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다 보니 조금 방심하면 거의 걷지 않습니다. 아마 저 같은 환경에 있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여차한 바쁜 일로 2~3일 동안 3000걸음만 걸을 때면 그 나머지 날들은 훨씬 많이 걸어서 보충해야 합니다. 며칠 아프면 한 달 평균 수치가 뚝 떨어집니다. 저는 만보 걷기로 시작해서 매년 월 평균 1000보씩 목표를 상향하려고 했습니다. 4년이면 1만4000보가 되는 거죠. 이 정도는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여전히 만보를 힘겹게 달성하고 있습니다. 평균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셋째, 선천적으로 걷기를 좋아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나름의 선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걷기를 좋아하지만 달리기는 여러 번 시도해서 실패했습니다. 집에 턱걸이 기구를 설치해 놓고 심심하면 매달리는 운동을 했습니다만 등 근육이 아프게 된 후로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걷기만큼 쉽고 재미 있는 게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어렵고 재미 없어 했습니다. 좋다고 해서 따라 하지 말고 걷기가 나에게 잘 맞는지 확인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먼 길을 가려면 신발이 꼭 맞아야 하듯이 20년 이상을 꾸준히 걸으려면 자신에게 맞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걸으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면 놀라운 결과를 얻습니다. 산악 자전거나 탁구는 거기에 몰두해야지 다른 걸 병행할 수 없는 반면에 걷기는 가능합니다. 저는 걷는 중에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강의를 듣습니다. 지속한다는 게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4년 동안 과학, 철학, 종교, 인문학 등 명강의를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유튜브이지만 주로 듣기만 하다가 가끔씩 영상을 보면 됩니다. 게다가 걸으면서 수많은 아이디어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누워서 생각하기도 앉아서 생각하기도 하는데, 걸으면서 생각하는 게 가장 균형 잡혔다는 말들을 합니다. 걷기는 운동량뿐 아니라 아이디어, 지식을 동시에 얻는 1석 3조입니다.
 만보 걷기를 만 4년 했다고 하니 아내가 건강이 좋아졌냐고 묻더군요. 사람들의 가장 관심사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매년 건강검진을 하는데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습니다. 근육량은 조금 늘고 체중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크게 아프거나 피곤해하는 것 없이 일할 수 있는 등 아직은 노화의 징조를 잘 못 느낀다는 정도입니다. 사실 이 정도 걷고 나서 많은 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인지도 모릅니다. 10년은 걷고 나야 그 효과가 입증될 것 같습니다. 이제 4년을 걸었으니 심화과정으로 들어가볼까 합니다. 기술적으로 잘 걷는 방법, 걷기의 인문학적 접근, 걷기의 변형 등을 시도하면서 데이터들을 모아갈 예정입니다.
 평생 오른손으로 나무를 치면서 단련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쇠 솥뚜껑 꼭지를 수도로 격파해버릴 정도입니다. 저는 따라 해봤지만 조금 하다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턱걸이를 좋아하다 몸짱이 된 사람도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만보 걷기가 그 범주에 속합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발견해서 평생의 동반자로 삼으면 여러모로 생각지 않은 유익함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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