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늙어야 한국사회가 바로 선다
  • 모용복기자
여성이 늙어야 한국사회가 바로 선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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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 에피소드 1
출근길 집을 나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풍경이 있다. 노란 소형버스가 쏜살같이 달려와 멈추자마자 젊은 여선생님이 잽싸게 차에서 내린다. 명랑한 웃음으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부모로부터 아이 손을 건네받아 차에 태우면 버스는 다시 휑하니 사라진다. 20년 가까이 아파트 생활을 하며 거의 매일 보는 익숙한 풍경이다.
“저렇게 상냥하고 예의바른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어떻게 학대가 발생하는 걸까?”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아동학대사건을 보며 이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뇌리에 각인된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대여섯 살 쯤의 아이들 10여명이 숲속에서 뛰놀고 있다. 나뭇가지를 가지고 노는 아이, 숨바꼭질하는 아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 모두들 자유분방하고 노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육십은 족히 돼 보이는 여교사가 벤치에 앉아 책을 보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이따금씩 쳐다볼 뿐이다. 더없이 평화롭고 조용하고 아늑한 정경이다.
몇 년 전 EBS에서 소개한 독일의 한 유치원 수업 모습이다. 방송의 의도는 딱딱한 시멘트로 된 교실이 아닌 자연에서 아이들을 뛰놀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나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머리 희끗한 교사의 모습에 더욱 눈길이 갔다. 젊은 교사가 대부분인, 그것도 웃음 띤 얼굴로 학부모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혀야 하는 우리와는 전혀 딴판인 독일의 교육 모습. 과연 어느 쪽이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일까?
젊음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늙음이 좋은 점도 많다. 특히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인생경험이 축적돼 있어야 한다. 젊은 교사가 지식을 전수(傳授)하는데 유리하다면 아이들의 인성을 기르는 데는 나이 든 교사가 더 나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오로지 젊음 일변도(一邊倒)다. 오늘날 인성교육이 무너졌다면 혹시 이로 인한 영향도 없지 않을 터.
# 에피소드 2
지난해 연말 퇴근길 라디오에서 어떤 기자(記者)가 한 외국기자로부터 “한국에서는 뉴스 진행자인 남녀 앵커의 나이 차이가 30살 이상 된다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는 일화를 털어놨다. “사실일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지상파 3사 메인 뉴스 앵커들의 프로필을 살펴봤다.
KBS 뉴스9 남자 앵커 김철민 51세, 여자 앵커 김솔희 34세(새해 들어 엄경철(51세), 이각경(33세)으로 앵커가 교체됨). MBC 뉴스데스크 왕종명 45세, 이재은 30세. SBS 8시뉴스 김현우 39세, 최혜림 36세였다. 남녀 앵커 연령 차이는 KBS 17살, MBC는 15살, SBS는 3살이며 3사 합쳐 평균 11.7살 차이를 나타냈다.
“에이, 아니잖아”
외국기자가 말한 것처럼 남녀 앵커의 연령이 3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기자가 아마도 젊은 여성 앵커를 선호하는 한국의 이상한 문화에 대해 비꼴 요량으로 과장되게 말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남녀 앵커의 연령이 천편일률적으로 남성 쪽이 많은 것은 분명했다.

지난 2015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조사한 결과에서도 남녀 앵커의 연령차는 확실히 나타났다. 지상파·종합편성채널·보도 전문채널 뉴스 프로그램 전체 남성 앵커 18명 중 14명이 40~50대였지만 여성 앵커는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20~30대였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남녀 연령 차이에 대한 원인으로 진흥원은 나이든 남성 앵커가 전문성과 신뢰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젊은 여성이 보조적인 이미지 전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바꿔 말하면 뉴스 본연의 목적인 전문성과 신뢰성을 전달하는 데는 젊은 남성보다 나이든 남성 앵커가 적합하고, 이미지 전달에는 나이 든 여성보다 젊은 여성 앵커가 어울린다는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직업은 아주 많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민첩하고 섬세한 손놀림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양궁, 골프와 같은 스포츠 종목에서 한국 여성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緣由)에서 기인(起因)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젊은 여성 선호풍조는 단지 능력이나 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란 데 문제가 있다. 진흥원의 분석처럼 이미지, 즉 여성이 가진 능력보다 상품을 위한 소비적 측면에서 그들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연예계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언론, 심지어 교육현장에서조차 여성을 섹슈얼리티화 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젊은 여성 선호 현상은 능력이 아닌 외적조건으로 여성의 가치를 판단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여성 스스로에게도 불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외적조건이 사라지면, 즉 나이가 들면 그가 가진 능력이 아무리 뛰어날 지라도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는 우리사회로서도 크나큰 손실이다.
특히 교육현장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지닌 여성 교사들의 섬세하고 자애로운 훈육(訓育)이 아이들의 인성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교육현장이 경제논리에 지배 당한지 이미 오래. 느리고 조용한 늙은 교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들의 귀중한 노하우와 경험들을 아이들에게 전수할 길이 막히고 만 것이다.
왜 옛날 훈장들은 항상 긴 수염에 곰방대를 물고 등장하는가. 홍안(紅顔)의 훈장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이들을 바르게 길러내는 데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옛 사람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머리 희끗한 여성 아나운서는 왜 뉴스 데스크에 앉으면 안되는 걸까? 심지어 40~50대 중년의 여성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뉴스조차 찾기 쉽지 않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그들이 어쩌면 시청자들에게 더 실감나고 호소력 있는 뉴스를 전달할 수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목전(目前)에 둔 한국, 갈수록 젊은 세대에게 쏠리는 문화집중현상, 양 극단으로 치닫는 한복판에서 우리는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젊음이 단지 상품의 가치로만 평가되므로 젊은 여성들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최근 한 언론사(국민일보)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91%, 30대 여성 81%가 외모, 성별 등으로 차별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다른 연령대의 여성이나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젊음이 수단화 되고 늙음이 무의미하다고 치부하는 사회, 여기가 과연 한 때 어른들의 지혜로 질서가 유지되던 아름다운 나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맞는가! 노인을 위한 대한민국은 진정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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