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튜닝은 하되 줄은 자르지 마라
  • 모용복기자
조현병-튜닝은 하되 줄은 자르지 마라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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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기소된 20대 남성이 공판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했다. 다음은 그가 판사와 주고받은 대화내용이다.
남성 “어머니와 동생이 뱀파이어여서 죽였습니다.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해 주세요.”
판사 “숨진 고인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 그분의 인적사항 등이 모두 공개된다.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다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참여재판을 해 사건이 공개된다면) 국민들이 (피의자)를 더 나쁘게 볼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판사 “그러면 어머니와 동생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
남성 “판사님이 어머니와 동생이 진짜로 죽었는지 증명할 수 있습니까? 어머니와 동생은 뱀파이어라서 죽였지만 살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판사 “뱀파이어라는 사실과 어머니와 동생의 사망여부는 피고인이 증명해야 한다.”
재판부는 지난 18일 열린 2차 공판에서 이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가 요구한 국민참여재판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며 “향후 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치료감호의 필요성과 재범의 위험성을 쟁점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뱀파이어 사건’의 진위(眞僞)는 국민 배심원단 손에 의해 가려지게 됐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지럽다보니 정신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이들로 인한 강력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고 있지만 위의 사건은 좀처럼 보기 드문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너무 봐서 스크린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탓도 있을 터. 이러다 조만간 사람들의 목덜미를 물어재낄 뱀파이어들이 길거리에 넘쳐날지도 모를 일이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선 때 승려 휴정이 쓴 선가귀감에 나온 조현지법(調絃之法)에 나오는 말로서, 이를 차용해 신경계 혹은 정신의 튜닝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아 마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 조현병이다. 2011년까지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다 새롭게 명명됐다.

최근 들어 조현병 환자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해 우리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급기야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마저 환자의 손에 희생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임세원 교수가 외래진료실에서 진료 중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임 교수는 사건 당시 범인에게 쫓기면서도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이 대피했는지 확인하려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또한 고인(故人)이 생전에 우울증 등 정신병 치료를 위한 활발한 연구활동과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죽음이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잔혹범죄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여자라서 죽었다”는 범인의 진술로 한 때 여성 혐오 범죄 논란을 불러일으킨 ‘강남역 화장실 살인’은 조현병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같은 해 인천에서 8살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엽기적인 사건 역시 10대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행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영양의 한 시골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는 40대 남성을 제지하던 경찰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남성 역시 조현병 병력(病歷)의 소유자로 밝혀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조현병 환자 수는 50여 만 명에 달한다. 우리 국민 100명 당 1명 꼴로 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단 조사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임상환자 증가율 1위를 기록한 진료과목은 조현병, 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다루는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정신과 의사가 최고의 유망 직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신과 의사가 대접을 받는 것이야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지만 병원마다 정신질환 환자가 넘쳐나고 이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면 사회는 심각한 혼란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조현병의 원인으로는 생물학적, 유전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 등 여러 요인들을 들 수 있는데, 최근 환경적 요인에 의한 증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가 발표돼 눈길을 끝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3~2017년 정신질환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환자 수는 177만명으로 2016년보다 5.9% 증가한데 반해 20대는 전체 평균의 두 배가 넘는 13.5% 증가해 전 연령층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뎌야 할 청춘(靑春)들이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악마의 병’인 정신질환에 시달려야하는 이유는 뭘까? 고교 때 수능으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 취업난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이 바로 그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황폐화시킨 주범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심보다 실제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발표된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비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1.2%인데 반해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0.08%로 나타났다. 비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가능성이 무려 15배나 높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스컴을 통해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가 유독 부각되다 보니 국민들이 과장된 공포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할 일은 결코 아니다. 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가족이고 보면 유·무형적으로 그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심각한 피해망상과 폭력성을 지닌 조현병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켜 치료를 하는 것은 범죄예방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범죄자들에 대해서도 섣불리 감형을 해서도 안 된다. 시한폭탄과 같은 그들을 심신미약을 이유로 사회에 복귀시켰다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현병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 일이다. 제 때 치료를 받으면 별다른 장애 없이 사회에 복귀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하니 가정은 가정대로, 국가는 제도적·물질적 도움과 홍보를 통해 환자가 조기에 치료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백아(伯牙·춘추시대 초나라 악사)가 절현(絶絃·거문고 줄을 끊음)을 하던 시대도 아니고 음이 안 맞는다고 악기의 줄을 무조건 잘라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현악기의 줄을 고르듯 조현병 환자의 흐트러진 정신을 정렬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조율사(調律師)들의 활약상이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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