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 명태의 꿈
  • 모용복기자
동해바다 명태의 꿈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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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아버지는 접시에 담긴 생선이 사람고기를 먹고 큰다고 하셨다. 그래서 처마에 매달린 생선 대가리를 자세히 봤다. 떡 벌어진 아가리, 날카롭고 뾰족한 이빨. 사람 살을 물어뜯고도 족히 남을 것 같다. 거기다 희멀건 눈과 거무튀튀한 몸까지 어디 한 군데도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는 명태.
그날 이후로 나는 명태반찬이 밥상에 오를 때면 젓가락이 가다가도 입맛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명태로 만든 음식을 싫어했다. 찌개, 국, 탕, 조림, 포 등으로 연중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이지만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고등어, 꽁치, 갈치와는 절대 비교가 안 되었다. 어쩌다 고등어, 꽁치 구이가 밥상에 오르는 날은 형제간 신경전이 펼쳐지고 어머니의 꾸지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하얀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집을 나서는 날은 읍내에 큰장이 서는 날이다. 아침에 출타하신 할아버지는 해 그림자가 마당에 내리고도 한참을 지나 대문을 들어서는데 손에는 어김없이 새끼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지고 눈이 희멀건 명태들이 줄줄이 엮인….
한동안 사랑방 처마에 매달려 있던 명태들은 조금씩 말라가는 순간부터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물론 고양이나 쥐들의 소행은 아니다. 집집마다 개와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다니므로 쥐들은 접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며, 고양이는 새끼줄을 탈 만큼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형들이 좋아하는 명태음식은 구이였다. 추운 겨울 쇠죽 끓이는 가마솥 장작불에 반쯤 마른 명태의 꼬리를 잡고 뒤집어가며 구워낸 후 아랫부분을 벌리고 두툼한 살점을 뜯어 ‘호호’ 불어가며 입어 넣으면 갖은 양념을 한 음식보다 백배 천배 더 맛이 있었다. 유년시절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지금은 동태탕이니 코다리찜이니 하는 전문음식점들이 생겨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예전엔 명태가 그리 인기 있는 생선은 아니었다. 가난한 집도 가끔 명태만큼은 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하고 값도 비싸지 않았다. 너무 흔한 탓에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요즘말로 국민생선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렇게 흔해빠진 명태가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며 이제는 ‘금태’로 불린다고 하니 세상이 변하긴 참 많이 변했는가 보다.

지난해 2월 독도 인근 바다에서 명태 한 마리가 그물에 올라왔다.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춘 지 18년 만의 일이다. 명태가 잡혔다는 소식에 정부, 지자체, 연구기관, 언론 할 것 없이 나라 안이 온통 들썩거렸다. 너무 흔해서 천대받던 명태가 이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고 해야 할지. 오죽했으면 해양수산부가 현상금을 내걸면서까지 명태 찾기에 나섰을까. 그리고 지난해 12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 일주일 남짓 명태 떼가 또다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기간 잡힌 명태는 모두 자연산으로 판명이 났다. 그토록 찾던 수배범이 나타났는데도 수산자원센터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하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해수부가 2014년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총 122만 마리의 치어(稚魚)를 방류해 돌아온 명태는 고작 4마리에 불과했다. 2015년 방류된 명태 가운데 이듬해 6월 속초에서 2마리, 2018년 3월 고성에서 1마리가 잡혔으며, 2016년 방류 명태 1마리가 2017년 2월 양양 앞바다에서 발견된 게 전부다.
그러면 방류된 명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환경에 적응 못하고 모두 죽은 것인지, 아니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북쪽의 찬 바다로 가버린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한다. 센터측은 이에 대해 아직 돌아올 시기가 이르다며 방류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기다리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와 더불어 명태 자원 고갈의 원인이 된 무분별한 남획을 방지하고자 앞으로 명태 포획이 크기에 상관없이 연중(1월 1일~12월 31일) 금지된다. 해수부는 자원이 회복되면 그 때 가서 금어(禁漁)기간 해제를 검토한다고 하니 동해바다 푸른 정기를 먹고 자란 우리 명태를 한동안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하기야 지금까지 먹어왔던 동태탕, 코다리찜도 모두 수입산 명태였다고 하니 어쩐지 입맛이 개운하지가 않다.
명태는 그 생김새나 맛으로 볼 때 ‘금태’가 아닌 역시 ‘국민생선’이란 이름으로 불려야 제격이다. 한 때 ‘개가 물어가도 그냥 놔 둔다’고 할 만큼 흔하디흔한 명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씨가 마른 것인지. 어디 명태 뿐이랴. 동해안에서 어획량이 급감한 오징어도 지금처럼 크기에 제한 없이 무분별한 남획이 이뤄진다면 명태의 전철을 밟을 것은 불문가지.
이 겨울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예술가에겐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서민들에겐 ‘이야기 되고 안주 되는’ 명태들이 푸른 동해바다를 가로질러 힘차게 꼬리를 퍼득이며 우리 곁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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