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사라 맥라클란의 ‘Surfacing’을 들으며
-청춘의 열병
그런 노래가 있다. 단 한 곡만을 선물 받았는데, 그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를 전부 훔쳐본 것만 같은. 그것은 다른 사람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는 일만큼이나 흥미롭지만 다소 난감한 기분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 노래에는 추천해준 사람의 삶이 일부분 담겨 있는 것이다. 사라 맥라클란의 ‘Adia’는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음악은 우리의 삶처럼 흐르는 중이기에 누군가를 경유한 이후에야 더욱 들을 만한 것이 되곤 한다. 사라 맥라클란은 내게 어떻게 왔던가. 작고 조용한 방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목소리와 마주하는 오후, 나는 가까운 과거로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
밤이 깊었지만 거리는 취기가 오른 사람들로 왁자지껄했고, 우리도 그 중 한 무리였다. 나보다 형들인 H, J,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내는 번잡한 분위기보다는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원했다. 우리는 중심가에서 벗어나 허름한 건물 1층의 다찌집으로 발길을 옮겼고, 그 까닭은 가게의 한쪽 벽면에 통기타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지 오뎅탕을 가운데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사장님의 지인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그 기타를 집어가서는 조율을 하기 시작했다. 가게에 앉은 손님은 우리 테이블과 커플로 보이는 한 테이블, 그리고 사장님의 지인인 기타리스트 이렇게 세 무리였다. 사장님은 커플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에게 왔다. 기타를 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는 1번 줄이 없는 기타로 김광석의 ‘그날들’을 불렀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커플과 우리는 박수로 화답했다. 나는 취중에 기타를 쳐도 되겠냐고 물었다. 내가 연주한 곡은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였다. 기타는 H를 거쳐 다시 사장님의 지인에게로, 나에게로 돌아왔다. J는 리듬을 타며 젓가락으로 테이블 드럼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열에 들뜬 기운을 견디지 못해 밤을 새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빛이 어둑어둑한 깊은 밤이 흐르고 있었다.
-청춘의 시간
-음악의 경로
H의 학창시절인 1997년, ‘Surfacing’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사라 맥라클란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다. 나는 TV광고와 영화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한 앨범을 집중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이름 역시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그녀의 목소리는 내 방 서재 안을 몽롱하게 부유하고 있다. 나는 수천 번이고 이 앨범의 베스트로 꼽는 Adia를 들을 수 있고, 수천 번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H를 거쳐 내게 온 음악이라고 상기하자, 나는 누군가에게 이 앨범을 전달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였다. 어쩌면 음악은 인간을 숙주로 삼은 고등한 생명체인지도 모른다. 나는 충성심 강한 사라 맥라클란의 숙주이고.
그녀의 목소리는 눈썹과 눈 사이의 눈두덩이, 딱 그곳에 알맞게 들어차는 노래다. 언제든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물을 떨어뜨리게 할 수 있고, 무겁게 짓눌러 내면을 바라보게 만들 수도 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듯 이리저리 흔들리게 몸을 둔다. 어느 순간부터 희뿌연 막이 걷히듯 눈앞이 투명하게 변한다. 온 마음이 그녀의 목소리에 스며든다. 아니,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에 스미는 중이겠지. 이 경계를 이젠 잘 모르겠다. 이것은 음악일 뿐인데, 한 세계를 본 듯한 기분이다. 그것은 H의 학창시절을 포함한, 또한 나의 주말 오후를 포함한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희망을 노래해 나갔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사라 맥라클란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기쁨에 대한 그리고 슬픔에 대한, 분노와 한탄과 절망과 도달하지 못할 행복의 감정까지 망라한 그 시간이 없었다면. 또한 공동체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치기로나마 서로를 위로하던 여러 밤의 주억거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경로였다. 운명처럼 이 앨범은 내게 도착했다. 이제 이 같은 고백의 경로를 통해 사라 맥라클란의 음악이 다시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로, 혹은 누군가에게로 제 시간에 가닿길 바랄 뿐이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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