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있는 다리, 이름 없는 아이들
  • 모용복기자
이름 있는 다리, 이름 없는 아이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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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여보세요? 일전에 부탁하신 일로 연락 드렸는데요.”
“장기항교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는 김동숙 총무팀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장기항교(將基項橋)는 다리 이름이다. 내가 이 다리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 것은 비학산(飛鶴山) 산행 후 하산길에 만난 자그마한 표지석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비학산 산행에 나선 것은 2018년 무술년(戊戌年)년의 마지막 해가 중천(中天)에 떠오르던 때였다. 한 해 동안 등산이라고는 고작 아파트 뒷산 몇 번 오른 것이 전부인지라 그래도 한 해동안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에 적합한 장소는 비학산 정상 정도는 돼야 한다는 식상한 포부를 품고 떠난 산행길이었다.
비학산은 산의 형상이 알을 품던 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포항시 신광면 상읍리와 기계면 미현리, 기북면 탑정리에 걸쳐 뻗어 있다. 해발 739m로 인근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산인 까닭에 연중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신광면 상읍리 쪽 비학산 기슭에 신라 진평왕 때에 고승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법광사(法廣寺)가 자리하고 있어 정상에서 다 못 버린 등산객의 번뇌를 말끔히 씻어준다.
필자도 마음 뒤숭숭할 때 곧잘 이 절과 산을 찾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금까지 이 작은 다리가 마음 속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산행 전까지는. 한 4m 남짓 될까? 무슨 교(橋)라고 부르기에도 너무나 작고 초라한 이 다리의 이름은 장기항교.

▲포항시 북구 신광면 비학산 기슭에 있는 장기항교(將基項橋). 왼쪽에 다리 이름의 표지석이 보인다.

비학산 정상에서 하산하다 보면 산 중턱에 옛날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던 무제등이 있다. 등성이 오른쪽으로 난 완만한 길을 수 십 분 내려가면 산 끝자락에 자그마한 다리 하나가 나온다. 시멘트로 대충 만든 듯한 인공미(人工美)가 그대로 드러난, 그래서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탓에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이 다리에 눈길이 간 것은 순전히 볼품없는 규모에 걸맞지 않은 표지석 때문이었다.
두어 발이면 뒤에 있을 넓이의 다리에 생뚱맞게 표지석이라니…. 익숙한 지명을 연상케 하는 다리 이름도 이곳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밀물처럼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 다리가 언제 놓였으며 표지석을 세운 이유와 이름은 왜 또 장기항교인지 등 말이다.
신문사에 출근해서 동료들 중 혹시 귀동냥이라도 있을까 물으니 문화부 차장이 두툼한 책 한 권을 건넨다. 경북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이석수 선생의 ‘포항땅 이야기’란 책이다. 기꺼운 마음에 만사(萬事)를 제쳐두고 탐색해본 결과 비학산 둘레의 마을 지명들에서 어렵사리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장기터-선돌 남쪽에 있는 마을, 선돌 마을 발상지가 되는 곳이므로 장기터라 부른다고 하였다’고 하는 대목이 나왔다. 그러니까 예전에 신광면 지역에 장기터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었으며 다리의 이름은 이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장기항교의 ‘장기’가 포항시 남구 해안지역에 위치한 장기면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름이라는 사실도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장기터란 마을이 다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나머지 사실들도 더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별 소득이 없어 결국 관할 관청에 직접 전화를 했다. 담당자라고 밝힌 신광면행정복지센터 총무과 직원으로부터 “자세히 알아보고 연락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심 기뻤다. 공무원들의 예의 사무적이고 부정적인 답변만 들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쩌면 이번엔 내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며칠 후 총무과 김동숙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의 말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학산 초입에 위치한 장기항교가 속한 산은 김씨네 문중 산이며 다리가 건립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근교에 주막거리인 장터(예전에는 ‘장터미기’라 부름)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차용(借用)해 다리이름을 ‘장기항교’라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다리 이름에 쓰인 ‘장’자가 한자로 장군을 뜻하는 ‘將’자이고 보면 ‘장기’라는 이름이 다른 데서 연유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다리에 대한 대강의 궁금증은 풀린 것 같다. 시답잖은 민원에 노력과 시간을 할애해준 그의 노고(勞苦)에 고마움을 전한다.
하루에도 수 십, 수 백 명이 지나는 길에 놓여져 하산객들의 번뇌의 흙을 털어내주고 있지만 하마터면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칠 뻔한 다리, 장기항교. 이 볼품없고 작은 다리도 어엿한 이름을 갖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는데 이름 없이 태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중한 생명들이 있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예은이, 다온이, 하은이(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거나 숨진 아이들의 가명)들이 나쁜 부모의 학대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오늘도 우리 곁에서 이름도 갖지 못한 채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앞집, 뒷집, 옆집이 서로 모르고 살아가는 시대라 하지만 어엿하게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가 출생신고도 없이 수년이 지나는데도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시대에. 정부, 지자체, 병원의 책임이 크달 수밖에 없다. 장기항교처럼 이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법과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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