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벡의 말하는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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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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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경북도민일보]

제프 벡의‘Blow by Blow’를 들으며

-말하는 기타
제프 벡이 내게 온 것은 열여덟 살 즈음이다. 제프 벡 뿐 아니라 게리 무어, 래리 칼튼,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도 함께 왔다. 내가 그들에게 간 건지도 모르나 그런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어쨌거나 새 학기의 봄날 컨테이너 박스 안 밴드실에서 세대와 국적과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여 우린 만난 것이다. 선배들은 그들의 노래를 씨디로 들려주었다. 씨디로 들려준 까닭은 직접 연주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들의 연주 안에는 어떤 소통 같은 것, 그러니까 해변에서 캐치볼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표정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유독 제프 벡의 연주는 울음에 가까웠다. 아니 그것은 웃음에 가까웠고, 어쩌면 울다가 웃는 감정을 가진 동물의 숨소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프 벡의 기타는 말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구름이 산에게 풀이 땅에게 파도가 바다에게 말을 거는 자연 속에서 내가 당신에게 혹은 당신이 나에게 건네는 말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모든 것은 소통의 일환이다. 이 문장도 말도 몸짓도 악수도. 화가는 붓과 물과 색으로 말을 한다. 작가는 펜과 종이와 활자로 말을 하고, 무용가는 몸의 선, 그 날렵하고 굴곡진 아름다움으로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기타리스트는 단연 기타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원목 바디와 길쭉한 넥, 그리고 여섯 현의 나란한 수평으로. 흔들리는 수평의 긴장 속으로 손가락이 들어찬다. 그리고 기타는 말한다.
“She’s a woman.”
말이 트인 아이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로 우주를 쏟아내는 것처럼 기타가 말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감각
‘She’s a woman.’은 비틀즈의 노래였다.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스티비 원더의 노래였다. 하지만 이 두 명곡이 <Blow by Blow>라는 희대의 명반에 담기는 순간 제프 벡의 것이 되었다.
그는 목소리를 쓰지 않고 말을 하는 기이한 마법을 선사한다. 그가 말하는 방식은 대략 이렇다. 기타의 픽업은 현의 진동을 흡수해 앰프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출력 코드로 변환된다. 기타를 연주함과 ‘동시에’ 앰프에서는 그 소리가 터져 나온다. 기타를 침과 ‘동시에’ 관객은 그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동시에’는 아니다. 치는 시간과 듣는 시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레이턴시(latency), 우리의 귀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레이턴시, 그 안는 제프 벡의 습관이 깃들어 있다. 제프 벡의 분노가 미움이 슬픔과 환락이 그리고 평화와 행복이 해체된 그 시간 속에 있다. 연주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 우리가 태어나 여태껏 길들인 그 순수하고 반 기계적인 오롯한 생명체가 쇠줄에 닿는 것이다. 그러니 제프 벡의 열 손가락은 그가 안은 기타의 여섯 줄과 같은 말이다. 제프 벡에게는 여섯 줄이 있고, 기타에게는 열 손가락이 있다. 이러한 감각의 에피파니(Epiphany)야 말로 제프 벡이 구사하는 어떤 경지인 것이다.

-연주가 흐르는 동안
그런데 과연 기타가 말을 하는 것인가, 제프 벡이 말을 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옳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제프 벡에게 물어보아도 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끈적끈적한 음표가 온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지만 도무지 해결할 방법도 없다. 딱딱하고 차가운 기타를 따듯하고 부드럽게 만들어버리는 이가 제프 벡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알아서 무얼 하겠는가. 이미 그의 연주는 20여 년 동안 내 몸 속에 들어차 있고, 무심코 들어선 지하의 펍에서 우연히 만나도 당혹스럽지 않으니 그럼 된 것 아닌가. 바 테이블에 앉은 한 손님은 잔에 가득 찬 맥주를 앞에 두고 졸고 있었고 제프 벡을 닮은 사장님은 신중하게 고른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있었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찬 겨울의 맥주와 나른하게 고개를 떨어뜨리는 맥주 앞의 사내와 바늘에 긁히며 돌아가는 제프 벡의 바이닐과 스피커에서부터 슬며시 나오는 기타의 중얼거림이 몽환적인 그 새벽을 정지 시켜주었지만 연주가 흐르는 잠시 동안이었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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