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오체불만족
  • 모용복기자
한국인의 오체불만족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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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욕심에 매몰된 세상
매사가 불만족스런 한국인
상대의 허점 그저 물고 뜯어
우리사회의 씁쓸한 자화상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우리 속담에 ‘적게 먹고 가는 똥 싸라’라는 말이 있다. 큰 욕심 내지 않고 자기 분수에 맞게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는 뜻이다. 인터넷에 속담을 검색해보니 조선 숙종 때 홍만종이 지은 잡록(雜錄)인 순오지(旬五志)에‘소소식방세시(小小食放細矢)’라는 한자성어가 등장하는데 뜻은 역시 같다. 또 박완서의 중편소설 ‘꽃을 찾아서’에도 “여북해야 그 노인이 두 달 만인가 석 달 만인가 그 애들 내보내고 나서는 앞으로는 절대로 허욕 안 부리고 ‘가늘게 먹고 가늘게 싸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다니겠어요?”라는 대목이 나오는 걸로 봐서 예전에도 폭식증(暴食症)에 걸린 사람들이 꽤나 있었던가 보다.
요즘 들어 우리사회에는 적게 먹고 가늘게 싸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너도나도 많이 먹고 많이 싸려고 하는 사람만 넘쳐나다 보니 세상이 온통 경쟁과 배설의 구렁텅이로 변해가고 있다.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까닭에 남이 조금이라도 자기 입맛에 어긋나는 언행(言行)을 할라치면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든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믿고 싶은 이들에게 어떤 간 큰 청와대 공무원이 ‘해피조선’이라고 외쳤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난 끝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무슨 엄청난 일이라도 벌어진 양 유력 언론들은 그의 말을 ‘망언’으로 몰아붙이며 연일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정치권도 기다렸다는 듯이 어퍼컷과 훗을 날려 당사자를 보기 좋게 넉다운시켰다. 그의 발언이 현재 우리 경제상황과 다소 동떨어지고 국민의 감정과 배치된다 할지라도 대통령이나 장관도 아닌 일개 경제보좌관의 말이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을까?
지난달 28일 대한상의 조찬 간담회에서 김현철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젊은이들을 향해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동남아로 가면 한국을 해피조선이라고 하게 된다’든지, 또 50~60대에 대해서는 박항서 감독을 언급하며 ‘할 일 없다고 산에나 가고 험악한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취직이 안 되는 청년들이나 실직상태의 중·장년층에게 이 말이 고깝게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일자리가 없어 취업이 안 되고 기업경영이 어려우면 국내 경제상황을 호전시킬 생각부터 해야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청와대 경제보좌관인 동시에 또한 대통령 직속 신남방특별위원회 위원장 신분인 점을 감안하면 그가 ‘블루오션’이라 여기는 동남아지역 진출을 강조한 것이 반드시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표현이 다소 투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불만이 한반도 상공 성층권까지 차오른 우리사회는 상대의 허점을 손톱만큼도 용인(容認)하지 않았다. 한 야당 원내대표가 주장한대로 국민들에게 그의 말이 얼마만큼의 상처를 준 지는 몰라도 자기 의견이나 이해(利害)에 반하면 승냥이처럼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것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청와대 인사(人士)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내 사랑 내 곁에’란 노래를 남기고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가수 외에 나는 전직 대통령 아들이든 코미디언이든 김현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단지 발언의 내용과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그를 매도하는 야박한 세상인심과 모순된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남이 나가라 하면 죽도록 싫은데 정작 자신은 무지 해외에 나가고 싶어하는 것이 또한 우리 국민들이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2018 교육여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0% 가까이가 자녀를 외국의 학교에 유학 보낼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25.4%, 중학교 32.7%, 고등학교 43.2%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또한 응답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학교에 대한 불만족이 가장 컸다. 유학 희망 응답률과 정반대로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학교 급이 낮을수록 높았다. 즉 초등학교가 가장 높고 다음이 중학교, 고등학교가 가장 낮았다. 자녀를 해외에 유학시키려는 목적은 해외 유수(有數)의 학교에 보내 좋은 스펙을 만들려는 성취형, 수능이나 내신에 자신 없는 아이를 위한 도피형, 그리고 입시지옥에서 아이를 건져내기 위한 구원형 등 여러 유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업어치나 메치나 교육 불만족은 마찬가지. 아마도 청와대 인사가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 가서 취업하라고 했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일요일 밤마다 EBS에서 방송하는 ‘아빠 찾아 삼만리’를 시청하던 딸애가 어느 날 뜬금없이 물었다. “아빠, 쟤들 아빠는 왜 아이들하고 떨어져 우리나라에 와서 힘들게 일해?” “그건 말이다. 우리나라가 그들 나라보다 잘 사니까 돈 벌려고 여기 온 거지.”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딸애가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나라가 잘 사는데 왜 엄마 아빠는 맨날 힘들다고 그래?”
“아 그건…” 갑자기 대답이 궁색했다. 모처럼 아버지로서 아는 체 해서 체면 좀 세우나 싶었는데 이놈이 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스타일 완전 구기고 말했다. 나는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게 먹고 가는 똥 안 싸려고 하니까 그렇지!”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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