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5·18에 대해 망언을 하는가
  • 이진수기자
누가 5·18에 대해 망언을 하는가
  • 이진수기자
  • 승인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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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을 폭도라 망언
민주화 역사·헌법정신 부정하는
지역 편가르기 정치적 술수 불과
미래역사 위해 과거역사 정립해야

[경북도민일보 = 이진수기자] 1980년 5월은 어둠이었다. 신군부의 서슬 퍼런 날들이었다. 자칫 무슨 말이라도 하면 큰 변을 당할까 두려웠다. 모두들 숨죽였다. 국가에 민주와 인권은 없었다.
1980년 당시 기자는 고교 2학년이었다. 대한민국의 보수라는 경북에서 그것도 광주와는 너무 먼 영덕의 한적한 마을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시골이라 바깥소식을 접하기도 어려웠지만 광주에 대한 언론통제가 워낙 심해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가끔 신문과 TV에 광주사태가 언급됐다. 폭도, 약탈, 무정부상태, 혼란 등의 용어로 가득했다. 폭도들이 날뛰어 공공질서와 사회안정을 해치고 있다는 보도였다. 용공분자의 책동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광주의 모습이 그러한줄 알았다. 나 뿐만 아닌 대부분 국민들도 그렇게 믿었다. 광주의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5월 끝자락에 광주는 질서를 되찮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광주는 그렇게 역사속에 저물었다. 이후 대학생활을 하면서 광주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됐다. 광주시민들은 폭도가 아닌 민주투사였으며,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권력 야욕에 정면으로 대응한 민주항쟁이었다는 것을. 전국이 숨죽여 있을 때 광주만 홀로 떨쳐 일어나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다. 무자비한 총칼의 탄압을 뚫고 말이다.
5·18 광주에 대해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보상법, 1995년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2002년 5·18 민주유공자예우법이 제정됐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고 희생자와 공헌자를 민주화 유공자로 예우하게 됐다. 국민들은 그들의 정신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이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8일 이종명 의원은 “5·18은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된 것”이라고 했으며 김순례 의원은 “종북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선 안된다고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제가 불거지자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며 옹호까지 했다.

5·18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 명시했으며 국민들 또한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이 5·18을 폭동, 괴물 등으로 비유한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39년 전인 1980년 5·18 당시로 되돌린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 또는 북한군이 남파되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왜곡하고 폄훼하는 것은 우리 민주화의 역사와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결국 독재정권에 맞서 피흘리면서 쟁취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며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다른 생각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관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거나 침해하는 주장과 행동에까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의 5·18 발언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망언에 불과하다. 민중의 세상을 열기 위한 우리의 역사는 참으로 지난했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의 침략에 맞선 동학농민혁명(1894년),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한 1919년 3·1독립운동,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1960년)과 부마민주화항쟁(1979년)이 있었다. 5·18도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박정희의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국민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군부독재의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1980년 광주는 달랐다. 온몸으로 저항했다. 전두한 정권의 장기집권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5·18이 재현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5·18은 1987년 6·10 민주항쟁의 큰 자양분이 됐다. 군부독재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5·18이 이땅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 5·18을 아직도 폭도, 괴물이라는 국회의원의 망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지역 편가르기라는 저급한 정치적 술수라고 하기에는 역사적 죄업이 너무 크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해 9월 시행됐다. 허나 진상규명의 주체인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개월째 구성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조사위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한국당이 자격요건 미달과 역사왜곡 우려를 낳은 인물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기약없는 표류다.
박세길 작가는‘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중이 미래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역사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올바른 역사 정립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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