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이 노래가 된다면
  • 경북도민일보
어느 밤이 노래가 된다면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9.0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성은의 사적인 LP

[경북도민일보]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들으며

-어제는 별이 졌다네
고층 아파트의 일상은 안정적이고 평온하지만 때론 적막으로 둘러싸여 나는 조금 차가워진 기분일 때가 있다. 저녁노을이 발끝에 닿는 날은 잘 없고, 아침이면 창을 여는 대신 휴대폰 속 미세먼지의 수치를 살피게 된다. 풀벌레 울음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개울 흐르는 소리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건 이제 생경하지도 않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봐도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맞은 편 아파트의 창 안에는 나와 비슷한 일상을 일궈나가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해가 지면 나도 그들도 커튼을 치고 네모난 거실 벽에 달린 TV를 들여다본다. 수천 개의 전구로 이뤄진 TV는 세상 무엇보다 밝게 빛난다. 어디에도 달빛은, 별빛은 없다. 별이 진다는 표현은 다만 문자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 풍경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 스케치’를 꺼내 든다. 잠시 동안 그들의 음악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행스케치에 몸을 맡기자니 가깝고도 먼 기억이 나를 움켜쥔다. 나는 어머니의 고향인 여수시 낭도 섬 바닷가의 귀포라는 아담한 마을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가는 손수레 안에 앉아 있다. 얼마나 빠르게 달려가는지 엉덩이는 쉴 새 없이 들썩이고 그 바람에 내 입은 함지박만 하다. 더 빨리 달리자는 의미인지 나는 소리를 내지른다. 수레를 끌고 있는 이는 누구지. 몸이 늘씬하고 피부가 검게 그을린 소년이 수레의 손잡이를 가슴팍에 움켜쥐고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덩그러니 뜬 달과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우리의 길을 밝혀주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리고 땀줄기에 반사된 달빛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나는 형의 이름을 부른다. 또 부른다. 형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앞으로 달려 나갈 뿐이다.

-기억의 스케치
어느 밤이 노래가 된다면 내게 그것은 ‘별이 진다네’ 같은 곡일 것이다. 갈색 통기타를 품에 안고 ‘별이 진다네’를 부르는 형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개구쟁이 같은 형의 얼굴 뒤로 묘한 그늘이 져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과거를 떠올리는 나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기억은 굴절되어 불분명하게 나타난다. 시골 여행의 그 밤들이 강렬한 이미지가 되어 지금 내게 말을 건넨다. 어쩐지 나는 여행스케치의 음악만 들려오면 돌연한 상태에 빠져 기억 속을 헤매고야 만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기억의 스케치이다. 1989년 나온 프로젝트 그룹인 여행스케치의 노래가 세상에 남아 위로가 되는 까닭은 누군가 지금도 이 노래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는 남고 사람은 죽는다. 그 자명한 사실 앞에서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스스로에게도 던지지 못한 채 그저 나약한 밤을 보내고 있다.
이따금 과거가 침범하여 정신이 무너져도 ‘별이 진다네’의 통기타 선율은 여전히 아름답게 들린다. ‘나의 가슴 속에 젖어오는 그대 그리움만이 이 밤도 저 비 되어 나를 또 울리고’  비는 오지 않았던 시골 여행의 짧은 대화는 이렇게 노래가 되어 남아 있다.

-오늘도 별이 진다네

사촌 주호 형에게.
‘성은아. 응, 형.’
‘영도다리가 너무 보고 싶구나.’
형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나는 기억합니다. 우리가 ‘섬’에서 나눴던 그 모든 일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미끼를 끼우지 않았는데도 통통한 노래미 한 마리가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왔었죠. 형은 나보다 더 기뻐하며 웃어줬어요. 스티로폼과 대나무로 뗏목을 만들어서 먼 바다로 나가기도 하고, 대나무를 휘어 활을 만들어 숲속을 헤매기도 했죠. 그러지 않으려 하는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들으면 아직도 눈물이 나는 게, 형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생생하네요. 군대에 있었기에 형과의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으니, 이별은 아니라 믿어요. 사라지는 것은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형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나만의 다리를 만들었고,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시네요. 아직은 어두운 바다 위에 있지만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나는 십년 전 입상한 청년문학상의 소감을 이렇게 썼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움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어느 밤이 노래가 된다면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할 것이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