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지 못한 추억 떠오르게 하는 뮤지컬 ‘광화문연가’
  • 이경관기자
완성되지 못한 추억 떠오르게 하는 뮤지컬 ‘광화문연가’
  • 이경관기자
  • 승인 201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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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관 기자의 공연산책] 뮤지컬 ‘광화문연가’
뮤지컬‘광화문연가’중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광화문연가’ 중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광화문연가’중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광화문연가’ 중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광화문연가’중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광화문연가’ 중 한 장면. 사진=CJ ENM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기형도 ‘빈집’ 中)
 모든 노래에는 사랑이 있다. 노래 속, 저마다 가진 추억의 깊이와 스토리는 다르지만, 먼훗날 그 노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곤 한다.
 죽음을 1분 앞둔, 한 남자가 기억의 빈집을 여행한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80·90년대를 상징하는 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가 흐른다. 추억과 사랑, 청춘의 순수를 떠올리게 하는 이영훈의 노래를 따라, 기억의 빈집 여정에 나선다.
 故 이영훈 작곡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을 주제로 한 곡들로만 이뤄진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지난 2, 3일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포항문화재단이 포항시 시 승격 70주년을 기념해 마련했다. 총 4회 진행된 이번 공연에는 2500여명의 관객들이 찾아 지난한 청춘의 흔적을 더듬고 순수했던 사랑의 그 때를 회상했다.
 2회차 공연이 진행된 2일 오후 7시30분 공연을 직접 찾았다.
 삶과 죽음, 그 경계 선 중년의 ‘명우’가 순수의 세계에 도착했다. 죽기 전 1분 중년의 명우는 인연을 관장하는 추억여행 가이드 ‘월하’를 만나, 자신의 첫사랑 ‘수아’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시간여행 안내자 월하를 맡은 김호영은 특유의 위트와 재치, 능청스러움으로 극의 서사를 이끌었다. 월하를 통해 기억 속 빈집을 찾아나서는 중년의 명우에는 이건명이 나서, 중년의 쓸쓸함을 전했다.
 2막으로 구성된 ‘광화문연가’는 시인 기형도의 대표작 ‘빈집’을 차용, 변주하며 극 전반의 스토리를 이끈다. 이영훈의 명곡, 기형도의 시, 월하와 함께하는 명우의 시간여행이 맞물리며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세계가 완성된다. 그렇게 죽음의 순간,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월하의 안내를 따라, 1984년 덕수궁의 어느 봄날로 돌아갔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옛사랑’ 中)
 젊은 명우는 덕수궁에서 열린 사생대회에서 첫사랑 수아를 만난다. 수아와 명우는 그렇게 순수하게 서로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5년, 대학생이 된 수아와 고3 대입을 준비하는 명우는 서로 다른 세계에 있음을 마주한다.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던 친구가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수아는 더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명우는 그런 수아에게 ‘어른들이 할 일이 있다’며 그녀를 말린다. 그러던 중 명우는 입대하고, 수아는 운동권에 투신한다.

 민주화를 외치는 수아와 국가를 위해 훈련을 받는 명우의 모습은 뮤지컬 넘버 ‘붉은 노을’과 맞물리며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연인을 담아낸다. 정의를 위해 나섰던 운동권 학생들과 그들을 제압하는 전경들,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는 모습은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그 시대 청춘들을 상징하듯 암울하고 처연하다.
 시위 중 운동권 후배의 안타까운 죽음을 목도한 수아는 지금은 사랑에 아파할 시간이 아님을 느끼고 명우에게 이별을 고한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수아와 그런 수아를 이해하지 못한 명우는 ‘빗속에서’,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을 통해 슬픔으로 발화한다. 젊은 명우를 맡은 이찬동은 사랑이 전부였던 그 시절 명우의 순수를 자신만의 색채로 오롯이 풀어냈고, 젊은 수아를 맡은 이봄소리는 시대에 항거했고, 그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던 그 시대 청춘의 아픔을 노래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 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 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광화문 연가’ 中)
 명우는 작곡가가 됐고, 학교 후배 ‘시영’과 결혼한다. 그러나 첫사랑 수아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향한 그리움에 노래를 작곡한다. 서로 다른 사람의 아내, 남편이 돼 우연히 만난 명우와 수아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극 후반 명우 ‘기억 속의 빈집’에 수아의 모습이 담기자 명우는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진다며 자신의 지난날을 다시 되짚어간다. 명우의 ‘기억 속 빈집’은 첫사랑 수아가 아닌, 함께 지난한 삶을 지나온 자신의 아내 시영이었던 것. 명우는 곡을 쓰며 자신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렸고, 그 과정에서 추억 또한 재창작했던 것이다. 자신의 기억 속 빈집의 주인이 시영임을 알게 된 명우에게 월하는 “지금 곁에 있는 이를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었음을 이야기 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라는 마음으로 사랑도, 완성되지 못한 추억도 그 나름으로 아름답다고 전한다.
 한편 막이 내리고 싱어롱 커튼콜에서 이건명과 김호영 등 주연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붉은노을’을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불러,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뮤지컬을 관람한 박진영(27) 씨는 “배우들의 열연과 이영훈의 명곡이 마주하며 깊은 울림을 전했다”며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 최영(31)씨는 “포항문화재단 출범으로 좋은 뮤지컬을 지역에서 만날 수 있어 좋다”며 “중년 명우역을 맡은 이건명과 특유의 위트로 분위기를 압도한 월하역의 김호영의 연기와 노래가 압권이었다”고 말했다.
 차재근 포항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포항문화재단은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 증진을 위해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공연 유치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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