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 수난史
  • 모용복기자
수리부엉이 수난史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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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울음은 불길한 징조
흉조라 몰리며 억울한 세월
인간 욕심에 삶의 터전까지
빼앗겨 더이상 설자리 없어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예전 여름밤의 무더위를 싹 잊게 해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KBS 납량특집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처녀귀신, 총각귀신, 구미호, 구렁이, 지네 등 수많은 귀신과 동물들은 실제로 사람들의 혼(魂)을 쏙 빼놓을 만큼 사실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면 가족 중 한 두 명은 얼굴을 돌리거나 눈을 가리기 일쑤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대부분 낮이 아니라 밤이 배경이다. 낮은 인간의 영역이요 밤은 귀신과 구미호, 그리고 천년 묵은 지네와 구령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밤은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귀신이나 구미호가 등장하기 직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매개체가 반드시 등장하는데, 어둠이 내리고 잠에 취한 마을을 향해 ‘우우~’하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때쯤 되면 아무리 담이 큰 사람들이라도 더 이상 극의 공포로부터 헤어날 방법이 없다.
예로부터 부엉이는 흉조(凶鳥)로 인식돼 왔다. 조선시대 때 부엉이가 울어 해괴제(解怪祭, 괴변을 막고 괴이한 일을 풀어주는 의례)를 지냈다거나 심지어 왕이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나오는 것을 보면 부엉이 울음을 얼마나 불길한 징조로 여겼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는 동아시아권에서 전해 내려온 올빼미(옛날에는 올빼미와 부엉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음)가 자신의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속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후한시대 반고가 쓴 역사서인 한서(漢書)에 ‘배은망덕하고 흉악한 인물’을 비유해 ‘효경’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이 때 쓰인 ‘효(梟)’가 올빼미를 의미하는 걸로 봐서 아마도 이러한 관념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서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귀족계층과 왕실에까지 부엉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민간에서는 부엉이를 그리 나쁜 동물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다. ‘부엉이가 울면 풍년이 든다’ ‘부엉이 곳간 같다’ ‘부엉이 집 얻다’와 같은 속담은 부엉이가 곡식을 도둑질해가는 쥐를 많이 잡아먹고, 새끼를 위해 먹이를 둥지 주변에 저장해 두는 습성에 빗대어 재물이 풍족해진다는 뜻을 지닌 긍정적인 속담들이다. 또한 ‘부엉이 방귀 같다’ ‘부엉이 셈치기’ ‘멧부엉이’는 생김새에 빗대어 어리석고 계산에 어두운 사람을 풍자한 민중들의 해학(諧謔)이 깃든 속담들이다. 이로 볼 때 우리 민족은 본래 부엉이를 친숙한 동물로 여긴 것이 분명하다. 중국문화와 한서의 영향으로 인해 1000년이 넘도록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으니 이토록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최근 생계형 범죄로 인해 누명 아닌 누명을 쓰게 된 수리부엉이가 화제다. 수리부엉이는 독수리처럼 몸집이 크고 용맹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 풍속과 문헌에 등장하는 부엉이가 바로 이 수리부엉이다.

자신의 양계장에서 닭이 수시로 사라지는 통에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친 주인이 작심을 하고 잠복에 들어간 끝에 마침내 범인을 잡았다. 그런데 막상 범인을 잡고 보니 사람도 아니요 개나 고양이도 아니요 다름 아닌 수리부엉이었다. 그간 훔쳐 먹은 닭 숫자는 11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주인은 자신의 재물을 약탈한 이 범인을 경찰서에 넘겼다. 마음 같아선 직접 분풀이를 하고 싶었겠지만 멸종위기 2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수리부엉이를 함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경찰도 수리부엉이를 가둘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구금 3시간 만에 야상동물보호협회에 넘겨 인근 야산에 방생토록 했다. 살기 위해 먹이사냥을 한 수리부엉이나 도둑을 잡고도 배상을 받을 길이 없는 주인, 그리고 범죄자의 특별 신분으로 인해 당황해 했을 경찰관들. 미소를 머금게 하는 해프닝 속에서도 우리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逸話)다.
부엉이는 어두워지면 활동을 하기 시작해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 먹이활동을 하는 야행성 동물이다. 낮에는 깊고 어두운 숲 속이나 나무구멍에 숨어 있다 밤이 되면 밖으로 나온다. 한데 닭을 훔쳐 먹던 수리부엉이가 주인이게 발각된 때는 해가 거의 중천(中天)에 다다른 시각이었다. 야행성 동물이 활동할 만한 시간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수리부엉이는 무엇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이 뻔한 백주 대낮에 양계장 습격을 감행한 걸까? 이는 먹이부족으로 밤 사냥이 어려워지자 본래의 습성마저 버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양계장을 습격한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야생동물들이 살아가기 버거운 현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밤에 부엉이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으레 뒷산에서 부엉이나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그러면 수리부엉이는 왜 우리 곁에서 사라졌을까?
우선 수리부엉이의 간이 정신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잘못된 믿음과 잡귀를 막는다는 미신(迷信)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남획되는 바람에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으로 1960~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쥐잡기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 쥐약에 중독된 쥐를 먹은 수리부엉이가 2차로 중독돼 죽게 된 영향도 크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도로 건설, 골프장 조성 등 각종 난개발로 인해 수리부엉이가 살아갈 터전이 사라진 것도 수리부엉이를 멸종위기동물로 몰고 간 주요인으로 꼽힌다.
오랜 세월 동안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흉조로 몰려 인간에게 박해를 받아온 수리부엉이가 이제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으로 삶의 터전마저 빼앗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갈색 깃털의 큰 몸집, 황금색으로 빛나는 둥글고 부리부리한 눈, 귀처럼 쫑긋한 깃털을 가진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 이 멋진 동물과 함께 살아갈 방법은 진정 없는 걸까?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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