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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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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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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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도 내버려두면 묵정밭
풀 베지 않는 낫 녹 쓰는법
어제 먹은 마음, 오늘 다시
새롭게 하지 않으면 메말라
수확을 위해 논밭 갈아엎듯
내 마음의 밭도 갈아엎자

[경북도민일보]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기다리는 사람도 오라는 사람도 없는데 마음이 들떠 두근거린다. 왜 이럴까! 휘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마다 돋은 새싹이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봄이와서 그런 것이라고. 죽은것만 같았던 거무스레하던 목피에 생기가 돌아 나뭇가지 가지마다 사랑고백에 수줍어 어쩔줄 몰라하는 여인의 볼처럼 발그스레하다. 햇살 흠뻑 머금어 젖가슴처럼 푹신해진 흙이 내딛는 걸음마다 감싸안아 주니 돌덩이 같은 가슴일지라도 어찌 요동치지 않을수 있으랴! 이육사의 시 한구절처럼 발목이 시리도록 들녘을 걸어도 성이 차지 않는다.
기다리면 오는구나. 송곳같던 소소리바람 무디어지고, 첫 사랑 머릿결 같은 홀보들한  춘풍 골짝마다 보듬더니 잔설이 녹아 어깨춤추며 흐르는 개울물 노래소리에 잠든 모든 생명들 기지개를 켜는구나. 온 산천, 온 들녘 초록빛 격동을 시작하누나!
저 멀리 생기 찬 참새 떼의 날갯짓 아래로 너름새 아지랑이 피어나는 들녘, 겨우내 눈보라 찬바람이 다져놓아 아버지 발뒤꿈치처럼 쩍쩍 갈라진 땅을 농부들이 갈아엎느라 트랙터 소리 요란하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소를 몰아 논밭갈던 그 시절, 서산으로 넘어가던 해는 왜 그리도 느리던지. 쟁기질 하시던 아버지의 이랴 이랴 소리가 쇳조각 긁히는 소리로 변해가면 지친 소의 입에는 끈적한 침이 고드름같이 매달려 있었다. 해거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어 보았다. “아버지 왜 이리 힘들게 땅을 갈아야 하나요? 그냥 심으면 안되나요?” 아버지는 “이눔아! 갈아 엎어야 바람이 스미고 햇살 숭숭 들어와 흙이 부드러지지. 그래야 연한 새싹이 뿌리를 깊이 잘 내릴수 있고 곡식도 잘되는거야”

반평생 살아보니 그랬다. 팍팍한 세상 산다는게 만만치 않아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이듯 마음도 그러했다. 긴 세월동안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나 자신을 증오하고 운명을 한탄하기도 했다. 다시는 아파하지 않고, 울지도 않고, 손해보지도 않으리라며 더욱 단단하게 마음을 다져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럴수록 행복은 정반대로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삶은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단조로와지며 고독속에 일상마저 황폐해지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내 마음 밭에도 심겨진 것 많았었지 않았던가! 고등어 등짝 같은 푸른 꿈이 있었고, 가난한 작은 별을 바라보며 미래를 일구어 내 삶을 진창에서 연꽃같이 피워올려 나의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르며 생의 열두 고개를 넘을 것이라던 맹세도 있었지 않았던가! 그렇게 수없이 반문하며 반추해본 결과 알게되었다. 오랫동안 내 마음밭을 내버려두어 덩거칠어진 푸서리 땅이 되어 황폐해진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본질적인 사랑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눈물을 잊어버린 마음은 감성이 메말라 죽은 묘지가 되어 있었다.
옥토도 내버려두면 묵정밭이 되고, 풀을 베지 않는 낫이 쉽게 녹이 쓰는 것처럼 흐르는 세월에 거칠어지고 무디어지 않는것 무엇 있으랴!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서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마음도 매일 다듬어야 하고, 한번 청소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이 아니며 사람의 마음도 한번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이 아니니 어제 먹은 마음을 오늘 다시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농부가 논밭을 갈아엎듯 이제 내 마음밭도 갈아엎어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을 바꿀것이다. 이 가슴 속을 내버려두어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폐가처럼 만들지 않을것이다. 그리하여 송화가루 부우옇게 흩날리는 봄에서 녹음짙은 여름을 건너 붉고 노란 단풍드는 가을이 오면 꽃진 자리마다 열매맺듯, 청춘을 지나고 중년을 넘어 내 생의 나무에 낙엽이 질 때 남겨질 흔적을 예비할 것이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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