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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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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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경북도민일보] 커티스 퓰러의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를 들으며

-닳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LP는 일종의 기록이다. 기억이기도 하다. 과연 이 기록매체가 기억을 유지시킬 수 있는가 하면, 그렇다. 또한 아니기도 하다. 기록과 기억은 그 자리에 영원히 유지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금씩 닳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Tape에서 LP로 MD와 CD로 저장되어 왔다. 점점 오래가고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모든 저장장치는 닳는다. 어떤 의미로는 녹이 슬고 있다. 부식되고 있다. 바스라지고 있다. 부서지고 있다. 시간 앞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내가 가진 LP는 언젠가 모두 가을볕에 떨어진 낙엽처럼 색이 바래 재생 불가능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MP3는 어떨까. 이것마저도 닳는다. 디지털은 시간의 개념을 보다 확장시킨 유통기한을 가지는 건 분명하지만 이 또한 영원이란 단어 속에 유예될 수 없다. 사실 영원이란 없다. 공룡이 멸종하고, 인류가 전쟁을 일으키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녹아대는 빙하를 멈출 수 없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닳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 그럴까. 아니, 사랑도 닳는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닳는다는 말은 이미지화를 위한 단어의 선택일 뿐 그 형태가 나쁘게 된다는 건 아니다. 예술에서의 타락이 결코 낮은 수준으로의 변질을 뜻하는 것이 아니듯 물질이나 감정의 해어짐 역시 그러하다. 다만 어떤 방향이건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비켜갈 수 없는 강력한 시간의 물성이자 한 존재에 대한 인정이다. 닳지 않는 것은 없다는 자명한 이치만이 오직 닳지 않을 것이다. 이는 죽음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사랑도 닳고 변합니다
커티스 퓰러 퀸텟의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이 레코딩 된지 60년이 지난 2019년, 나는 스피커 앞에 앉아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와 바람의 방향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의 숨결을 느끼려 애쓴다. 단 3초만, 단 한마디만 들어도 이 노래에 이끌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커티스 퓰러의 낮고 묵직한 트롬본은 평온한 호숫가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파동을 만들어 낸다. 베니 골슨의 테너 색소폰은 트롬본을 뒤따르며 부드럽게 비행한다. 심박을 소리로 내자면 지미 개리슨의 베이스 같을 것이다. 토미 플라나건의 피아노는 행간에 빈틈없이 스미어 든다. 알 헤어우드의 드럼은 무심하고 단정하며 또한 정확하다. 코드는 변주되고, 변형되고, 변환된다. Ⅵm로 시작되는 노트는 끝 간 데 없는 변태(變態)를 경험한다. 이 곡이 담긴 앨범 <Blues-ette>는 커티스 퓰러가 부는 트롬본에 의해서 1959년의 재즈클럽과 흑인들의 유행하는 말투와 음악이라는 본성에 의해서, 무엇보다 이전 세대의 재즈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연주자의 스킬과 화음과 화성과 대한 감탄도 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 앨범은 닳고 닳아 국가와 인종과 세대와 사랑을 통과하여 내 앞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사랑과 최후의 사랑
그리고, 이 순간은 또한 닳는다. 나는 그러나, 라고 쓰려다 한참을 고민한 이후 그리고, 라고 다시 바꿔 쓴다. 아무래도 우리네 삶은 그리고, 에 더욱 가까운 것 같기 때문이다. 음표는 삶이 그러하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나아간다. 제아무리 도돌이표가 악보를 되돌려둔다 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완벽하게 같은 노트인데도 그것은 이전의 것과 다르게 들린다. 반복에서 오는 차이야 말로 음악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최초의 사랑을 되풀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최후의 사랑에 대한 해답인지도 모르겠다. 도처에 사랑이 있다면 아주 닳아도 좋다. 그렇게 닳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사랑이 또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의 마음은 영원할 수 없지만 영원하다고 숭고한 것만은 아니다. 닳는다는 사실만이 이 생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닳고 닳은 진부한 단어로, 사랑으로 말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잠시 숨을 죽이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조금씩 닳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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