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하는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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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하는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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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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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다‘성장 한계통’앓이
확장·개발의 성공 시대는 끝
더 높은 삶의 질 제공이 성공
인구 수가 곧 좋은 지역 결정
 
도내 중소도시 인구유출 위기
대도시의 성장 따라하기보다
정체성 맞는 지역디자인 필요

[경북도민일보] 재미있다 해야 할지, 씁쓸하다 해야 할지 모를 기사를 보았다. 인구 10만대가 붕괴한 상주시에서 전 직원이 상복을 입고 출근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삼베옷은 아닌 검은 정장으로 통일한 정도였지만, 기사를 보고나니 정리하기 어려운 혼란이 느껴졌다. 농업 비중이 큰 도시라고는 하나 10만대 지역 하나가 사라지다니. 기사에 대한 댓글 반응들 역시 혼란의 와중이었다. 이민을 대거 허용해서라도 인구감소를 막자는 급진파(?), 우리나라 인구는 좀 줄어도 된다는 관망파에서부터 공무원 수나 줄이라는 냉소파까지. 개인적으로는 사실 상주 공무원들의 특별 이벤트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옷을 입어주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주의 10만 붕괴는 또 다른 시대의 서막이요, 신호일 수 있다. 경북에는 안동, 김천, 칠곡, 영천, 영주가 아직 10만대 자존심을 지키는 도시들이지만, 조만간 상주 뒤를 따를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그뿐 아니다. 포항은 50만, 구미는 어느덧 40만 방어가 발등의 불인 상황이다. 조만간 공무원 사회에 상복 드레스 코드가 일반화될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성장한계통’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커 가기만 할 줄 알았는데,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충격, 그것도 성장통 못지않게 고통스럽다. 성장신화를 긍지로 살아온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놀라거나 분노할 일은 아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만들어온 결과가 아닌가. 인구구조 자체가 성장형에서 노령화형으로 바뀐 지 오래이다. ‘왜 하필 우리 지역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이 조금씩 차이를 두고 겪게 될 일이다. 겪어야 할 충격이라면 빨리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우리 도시들은 아직 성장한계 시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도시기본계획 수립 때마다 논란이 되는 ‘인구 예측 뻥튀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역마다 예측한 인구를 다 합하면 총 인구가 2억이 넘어가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최대한 개발하고 확장해 놓으면 인구는 알아서 증가한다는 식의 낙관은 이제 버려야 한다. 성장한계 시대의 과도한 팽창은 도시를 허술하고 ‘못생긴’ 구조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사람의 발길을 떠나보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발로 하는 투표’라는 경제지리학자 찰스 티보의 개념을 새겨야 할 때가 되었다. 성장이 완료된 사회에서 시민들은 더 좋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지역을 찾아 자유롭게 이주하는 경향을 보이기에 이들의 이동패턴이 결국 좋은 지역을 뽑는 투표와 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발로하는 투표 현상은 미국에서는 이미 큰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부지역이 문화와 산업 모두에서 매력적인 곳이 되어가며 북동부의 전통적인 밀집지역으로부터 인구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시들에게도 인구 유치를 위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구가 귀한 자원인 시대에 각 지역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역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노력이 없다면 자연적 쇠락에 인구 유출까지 더하면서 사라져가는 지역들이 실제로 발생할 것이다.
확장과 개발이 곧 성공이던 과거의 공식은 끝나고, 더 좋은 삶의 질을 마련하는 도시가 성공하는, 새로운 성장공식의 시기가 오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이미 성장공식이 뼛속 깊이 박힌 우리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혁신을 통해 발로하는 투표를 준비하는 지역에게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방 중소도시도 상복을 입고 슬퍼할 것만은 아니다. 성장하는 대도시 주변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잡기 위해 노력하던 것이 그동안 지방 중소도시의 처지 아니었던가.
다가올 변화는 그들에게는 오히려 전환의 계기일지도 모른다. 제한이 많아지는 시대에는 작은 몸집과 날렵함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 그에 기반을 둔 역사와 문화, 지역산업을 일궈가는 지역이라면 어떤 시기에도 기회는 있다. 상복은 되도록 빨리 벗고, 깔끔한 턱시도에 밝은 미소로 미래를 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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