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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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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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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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칼럼

[경북도민일보] 작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 팀이 월드컵 예선에서 패한 뒤 뉴스를 보다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 선수의 실책으로 인해 경기에서 패하자 비난이 쏟아졌는데 개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그 선수의 입국금지 청원이 올라왔고, 심지어 국내추방, 선수자격박탈, 국가 대표 팀에서 영구제명, 대한민국에서 추방을 해야 한다는 청원까지 있었다는 보도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이토록 패역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을까? 다음 경기에서는 가능한 많이 져라. 이런 저열한 심성을 가진 팬들에게 영광을 얻은들 무엇 하랴!”그 선수는 실수하고 싶어서 한 것인가! 공격라인부터 시작해서 중간수비수가 뚫리니 최종수비수가 결사적으로 수비하다 실수를 한 것뿐이다. 그가 국가반역의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그저 운동경기였다. 일말의 관용도 없는 청원을 올린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실수한적 없는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책하는 선수에게 위로와 격려는 못할망정 죽도록 뛴 그 선수의 가슴을 할퀴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들고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어야 기어코 직성이 풀리는가!”라고. 물론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비이성적인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며 비방과 비난으로 한 선수의 가슴에 못질을 한 것이다.
비판과 비난의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비판은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는 전제하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잘못된 점을 밝히거나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에 반해 비난은 주관적인 생각과 치미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마구 헐뜯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판은 생산적이지만 비난은 파괴적이다. 인간의 속성상 옳은 비판일지라도 달갑지는 않지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면 고통이 수반되듯 건전한 비판은 건설적여서 발전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비난은 인격을 허물어뜨리고 인신 공격적이므로 파괴적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실례도 있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학생들이 문학클럽을 조직했다. 클럽의 결성목적은 서로의 작품을 읽고 냉혹하게 비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각자 재능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매번 토론회 때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했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갈 때마다 학생들은 풀이 죽어 있거나 분노에 차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나를 맹렬하게 비판한 상대를 짓뭉개 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 학교에는 재능을 별로 인정받지 못한 학생들이 모인 또 다른 문학클럽이 있었다. 하지만 목적은 달랐다. 이들은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목적이었다. 그 클럽 안에서는 항상 웃음소리가 새어나왔고 분위기는 늘 따뜻했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로 만들어진 클럽에서는 작가가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지만, 범연했으나 서로를 긍정하고 격려하던 클럽출신의 학생들은 다수의 훌륭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의 클럽에서 쏟아져 나온 가혹한 비판이 비난으로 전이되었고 그 비난으로 인해 타고난 재능마저 파괴된 까닭이었다.

미드라쉬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헐뜯는 비난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비난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난을 한 자신과, 퍼뜨린 사람, 비난을 막지 않고 들은 사람이다.”그런데 이 말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미디어와 인터넷, SNS등 정보통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세 사람만 죽이는 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사회. 정치 전반에서 비판은 없고 비난만 난무하고 있다. 정의의 잣대는 구부러졌고 진리는 논리에 짓밟혀 버렸다.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흑백논리 속에 상대진영을 향해 병적인 적개심만 드러낸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모두는 지역감정과 이념충돌에 사로잡혀 칠면조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칠면조는 무리 중 하나가 상처를 입으면 다른 모든 칠면조들이 덤벼들어 쓰러질 때까지 그 상처를 쪼아댄다. 세상 어디에도 격려하고 관용하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 맹목적이고 소모적인 힐난만 가득한 이런 사회가 과연 오늘의 번영을 구가할 자격이 있는가?  “망해도 싸다”는 말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제는 정말 정치도 바뀌고 변화해야 하지만 국민도 바뀌고 성숙되어야 한다.
사람은 이미 발생된 일에 대해서는 확연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쉽게 분별해내지만 어떤 일의 발생상황에 직면하여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실수도 한다. 그러함에도 비평가들은 언론매체에 출연하여 모든 면에서 완벽한 최정점 잣대를 기준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비난한다.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못해 먹겠다.”는 말을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일은 분열이고 분열의 원인은 서로를 비난하는데서 시작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오늘부터 당장 자녀들을 끊임없이 질책하고 나무라보라. 얼마 못가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파탄 나고 아이는 목표를 향한 동기와 동력을 상실한 채 아무 의욕 없이 마음속에 깊은 분노만 품을 것이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 한 자꾸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비난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따져보아야 한다. “사실관계를 다 파악하였는지, 그 동기를 완전히 이해하였는지,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하였는지,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는지, 보지 못하는 부분은 없었는지, 편견으로 시야가 흐려지지는 않았는지, 자신도 불완전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지를”?  
모간 블레이즈는 비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되새기고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있다./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국가, 그리고 어떤 조직도 파괴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고,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더럽혀 질수 있다./ 나는 바다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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