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팻 메시니의 ‘Beyond The Missouri Sky’를 들으며
-질문하는 자의 표정
뛰어난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그만의 표정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 표정이 모두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박자, 음정, 화성 혹은 즉흥연주의 느낌이 담긴 표정일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도 아닌, 다만 그가 추구하는 어떤 관념 혹은 정취를 향한 ‘질문하는 자의 표정’인지도 모르겠다. 팻 메시니는 ‘음악은 악보 안에 모두 있다’고 말한 글렌 굴드의 생각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최상의 연주는 문서화된 악보를 완전히 배제했을 때 나온다’고 말한다. 천재라고 불리는 그들은 평생 연주한 악기를 하나의 도구로 보고 그 너머의 것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같은 태도야 말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를 견인하는 음악의 존재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팻 메시니의 연주는 과하지 않으나 과감하고 침착하나 경쾌하며 정처 없는 것 같지만 그보다 정확할 수 없다. 6현의 기타이건 42현의 피카소 기타건 그의 손가락은 지판 너머의 관념을 두드린다. 악기-연주자-음악이라는 삼각형 속에 웅크리고 있는 공백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채워나가는 그의 연주는 개인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이고, 부드러우면서도 격정적인 한편의 시와 같다.
누구도 그곳에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닿아보면 그저 느껴지는 것이다.
-맥주와 팻 메시니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만 이 음반을 슬쩍 알려주곤 하는데, 그들은 결국 나보다 더 팻 메시니를 아끼는 사람들이 되곤 했다. 어느 때고 그를 만나는 시간은 즐겁기 그지없지만 특히나 맥주가 당기는 날에는 더더욱 그를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해운대 달맞이길의 숨은 펍 slow에서 종종 “Walts for Ruth”를 듣곤 했다. 하나의 음이 높낮이가 다른 계단을 조심스레 걸어가는 것 같은 이 곡의 전개는 서정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긴장을 이끈다. “Our Spanish Love Song”, “Cinema Paradiso” 등 촛불이 흔들리는 그 공간에서 팻 메시니의 기타와 찰리 헤이든의 콘트라베이스를 듣고 있을 때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다, 는 생경한 깨달음으로 돌연 허무해지고 마는 묘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다만 나는 그의 음악에 빠져 있을 때면 예외 없이 과음을 했다. 변명하자면 팻 메시니의 음반에는 세이렌의 노래 같은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끌림이 있었다. 그럼에도 바다로 뛰어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또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숨어 있던 작은 상처가 도드라지는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 틈은 자꾸만 벌어지고 바람이 숭숭 드나들기도 해 그 밤 동안에는 제법 시리고 아팠다.
-미주리의 하늘 너머
리처드 나일즈와의 대담(팻 메시니, 온다프레스, 2018)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미주리 주의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나 트럼펫을 거쳐 기타를 안게 된 팻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웨스 몽고메리와 비틀즈를 접하게 된 그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이 되리라고 생각해봤을까. 청바지와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긴 곱슬머리를 풀어헤친 채 연간 평균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치는 그는 어디에 가 닿고 싶은 것일까. 그의 관념은 무엇일까, 그의 이상은 무엇일까. 그는 어떠한 음악을 표현하고 싶은 것일까.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그의 몸짓과 기타를 안은 포즈와 적당히 떨어뜨린 고개의 기움과 주저하지 않는 손가락을 살필 것이다. 그의 발뒤꿈치와 눈빛과 목젖의 움직임을 관찰할 것이다. 그가 내쉬는 숨과 쉼과 소리가 얼마나 살아 있는 것인지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질문하는 인간’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궤적 속에서 저마다의 포물선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듯이, 살아내고 있듯이, 팻 메시니의 삶 전체는 하나의 악보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중이다. 미주리의 하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득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그의 표정이 궁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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