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너머 소통과 화해를 말하다
  • 이경관기자
삶과 죽음 너머 소통과 화해를 말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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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관 기자의 공연산책] 포항시립연극단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
포항시립연극단 '연기가눈에들어갈때 공연 모습
포항시립연극단 '연기가 눈에 들어갈때' 공연 모습
포항시립연극단 '연기가눈에들어갈때 공연 모습
포항시립연극단 '연기가 눈에 들어갈때' 공연 모습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어쩌면 삶이란,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삶과 죽음, 그리고 함께 살 부대끼면 살아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포항시립중앙아트홀 무대에서 펼쳐졌다.
 포항시립연극단은 지난 25~27일까지 3차례 제180회 정기공연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를 포항시립중앙아트홀에서 선보였다. 연극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는 일본작가 쓰쓰미 야스유끼의 원작을 김순영 연출가가 번역했으며 2007년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평단과 관객에게 인정받았다. 이번 포항시립연극단 공연에는 객원연출로 오정국 연출이 맡아, 그만의 따뜻한 감성과 유쾌한 시선으로 극을 풀어갔다. 포항시립연극단 제180회 정기공연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에는 3회동안 500여명의 포항시민이 찾아 연극을 관람했다.
 지난 27일 마지막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 3시40분 포항시립중앙아트홀에는 포항시립연극단의 공연을 찾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찾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공연장에 설치된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직을 찍고, 비치된 공연 팜플렛을 읽으며 공연에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4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암전됐다.
 “나일론 수의는 몸에 안 좋다던데”
 극은 벚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화장터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한 날 죽은 김진우와 기영식은 수의를 입은 채 영혼이 돼 저승에 가기 전 만났다. 같은 날 서로 다른 이유로 죽었지만, 같은 화장터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들의 육신이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 또한 인연이 되어 아득하고 긴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저승길의 길동무가 되기로 했다.
 청소년 축구부 감독을 맡고 있는 김진우. 그는 늘 바쁜 훈련일정으로 가족들에게 소홀하기만 했다. 그의 가족들은 가족보다 일이 우선인 그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열정적으로 그의 일을 응원했고 존중했다. 그런 가족들에게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그의 아내 박정미는 아들과 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보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을 뿐 이었다. 그의 여동생 김진숙과 철없는 남편 마동일 역시 김진우의 죽음을 위로하며 힘들 때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죽어 한 화장장에 온 기영식은 가족이라곤 외동딸 기선자 뿐이라 썰렁하다. 기선자는 손녀딸 뻘인 여자와 만남을 이어온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아 생전에 사이가 좋지 못했고, 그의 죽음 또한 슬프기보다는 어떤 어려운 일을 치워가는 듯 보였다.

 김진우와 기영식, 모두 갑작스레 숨을 거둬 가족과 주위에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치매에 걸린 김진우의 어머니 이점순은 두 영혼을 볼 수 있었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영혼은 가족에게 원하는 말을 남기고, 이 과정에서 숨겨진 인생사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진우의 아내 박정미는 시어머니를 통해 남편의 영혼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통곡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일 밖에 몰랐어요. 일이 바빠 늘 집을 비워도 나는 당신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나를 두고 먼저 갔나요.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런 아내에게 그는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객석 곳곳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우는 어머니의 입을 빌려 아들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당부했으며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기영식도 자신의 딸과의 오해를 풀고 용서와 화해를 하며, 연인과도 마지막 이야기를 나눴다. 한 평생 함께 산 아내의 죽음으로 외로운 그에게 어린 연인 강미희는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딸 기선자에게 “그 누구보다 내 딸인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며 그의 딸 기선자 역시 아버지를 이해하기 보다, 원망하기만 했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기영식은 어린 연인 강미희에게 “진심으로 사랑했다. 누구보다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말은 전한 두 사람의 육신은 타서 재가 돼 버리고 두 가족은 화장터에서 작별의 사진을 한 컷 찍으며 극은 막을 내렸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김미진(35) 씨는 “죽음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다룬 것 같다”며 “가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 박영수(43) 씨는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생각이 나 많이 울었다”며 “좋은 연극 보여준 포항시립연극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을 연출한 오정국 연출은 “연극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는 ‘인간은 태어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원초적인 주제적 사실을 유머와 사실적인 상황으로 풀어낸 작품”이라며 “결국 이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과 화해다. 외동딸과 화해에 이르는 기영식의 죽음은 죽은 자와 산자의 화해, 온 가족을 한 자리에 모으는 계기를 만든 김진우의 죽음은 산 사람이 화해에 이르는 계기인 것이다. 이 연극 을 통해 가족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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