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홍범도 장군
  • 모용복기자
‘민족의 영웅’ 홍범도 장군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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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지난 22일 독립지사 두 분이 귀환했다. 조국을 떠난 지 100년 만이다. 꿈에도 그리던 독립된 조국의 땅을 살아생전에는 밟아보지 못하고 사망한 지 수 십년 후에야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민족교육에 헌신한 계봉우 지사와 독립군 무장대원으로 활약한 황운정 지사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운동가의 유해가 국내로 송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현 정부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일환으로 추진해온 애국지사 유해봉송 사업의 가시적인 성과다.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해외 현지에서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식을 주관하며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나라를 위해 숨져간 애국지사의 넋을 달랬다. 문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네 분(두 지사와 배우자)을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할 임무이자 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라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하신 독립유공자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유해 봉환식에 앞서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에 있는 고려극장을 찾았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 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일제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했던 홍범도 장군이 경비로 일하며 생활고 속에서 쓸쓸하게 말년을 보낸 곳이다. 홍 장군은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떠나 크즐오르다에서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고려극장은 당시 이 곳에 있다 1968년 알마티로 이전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홍 장군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던 장군은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해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1개 여단을 물리치는 전과(戰果)를 거뒀다. 이로 인해 일제는 장군을 두고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또한 홍범도 평전의 저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 중 첫째가 홍범도, 둘째가 약산 김원봉, 셋째가 김구 선생이었다고 하니 장군이 독립 무장투쟁에 있어 어떠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민족의 영웅’이 이번 유해 봉환식에서 빠져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동안 장군의 유해 봉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 카자흐스탄과 국교를 맺은 이후 김영삼 정부가 1995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당시 북한이 장군의 고향이 평양인 점을 들어 연고를 주장하고 나서는 바람에 성사에 이르지 못했다. 또한 역대 정권에서 봉환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홍 장군은 최재형, 이동휘 등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이다 보니 정부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유해 봉환은 물론이요 장군에 대한 평가를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 역시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높이 평가하지만 유해를 봉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김일성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경쟁자격인 장군이 부각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북한의 태도가 우리에게 있어 장군의 유해 봉환을 가능케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오랜기간 북한과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해왔던 카자흐스탄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유해 봉환을 꺼린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경제개방과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성장의 길로 내닫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지금 북한보다 한국의 투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니 장군의 유해 봉환을 위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고려극장을 방문한 다음날인 22일 양국 정상회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늦어도 내년까지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양국관계와 국민간 교류를 감안해 내년 행사 때까지는 해결될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이 북측이 딴지를 걸고 나선다면 순순히 우리의 요구에 응할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북한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일이다. 북한도 현재의 남북관계를 감안할 때 반대만 할 일이 아니므로 성사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고착국면에 빠진 남북관계를 푸는데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어쩌면 유형적인 것보다 민족의 동질감을 높이는 무형의 것이 한반도 평화를 열어나가는 열쇠일 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이 말했듯이 대한의 독립운동은 아직 미완의 상태다. 비록 1945년 광복을 통해 일제로부터 국토와 주권을 회복하긴 했지만 독립운동의 주역들이 한 맺힌 이국 땅에 묻힌 채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며, 청산되어야 할 친일잔재들이 오히려 발호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두고 어떻게 독립 완성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장군의 유해 봉환이 한시 바삐 성사돼야 하는 이유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살아서는 독립을 위한 불꽃이 되었으며 죽어서는 한반도 평화의 찬란한 별로 빛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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