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구룡포, 그리고 근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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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구룡포, 그리고 근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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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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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얼마 전 목포 구도심이 갑자기 전국민적 이슈가 되었었다. 모 국회의원이 이곳의 낡은 근대건축물을 대량으로 사들였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위치로나 건축양식으로나 별로 선호도가 없어 매매 기미조차 없던 건물을 여러 채를 사들였고, 그러자 마자 일대에 등록문화재가 지정되어 그 가격이 급상승했다고 하니, 정말 부러운 선견지명(?)의 능력이 아닐 수 없겠다. 수상한 사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잊혀져가던 근대 건축유산이 다시금 조명을 받는 계기는 되었다. 근대 건축물 하면 보통 군산, 목포 등을 떠올리는데, 사실 경북에도 적지 않은 수가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포항 구룡포항은 좀 더 특별하다. 건물 뿐 아니라 가로 경관 자체에 일본풍이 남아 있는, 일종의 ‘리틀 재팬’이라 할 수 있는 거리가 이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대 유산에 있어 포항도 다른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를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보고 복원하는데 있어서는 아직 많은 논란이 있다. 근대 건축물을 적산(敵産)가옥, 즉 ‘적들이 남긴 잔재’ 정도로 보는 인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구룡포 근대 거리에 대해서도 ‘일본×이 만든 거리를 왜 우리 돈 들여 복원하냐?’라는 식의 거친 의견들이 여전히 강하다. 물론 복원을 찬성하는 의견도 많지만, 근대 유산으로서의 가치 때문이기 보다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에서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목포나 구룡포나 근대 건축물 복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의견은 비슷한 것 같다. ‘식민 잔재이기에 꺼림칙하다, 하지만 지역 관광에 도움이 된다면 눈감아줄 수는 있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과연 근대건축은 ‘적들의 자산’이요, 배척해야 할 식민지 잔재에 불과한 것일까? 이는 건축유산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하고 싶다. 건축양식, 특히 주택의 양식은 오랜 세월 여러 문화가 때로는 만나고 때로는 스쳐가면서 쌓이고 융합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어쩌면 거기에 순수한 ‘우리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에 이미 세계 곳곳에서 스며들어 온 영향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적산가옥이라 부르는 일본식 가옥, 즉 ‘마찌야’ 양식도 반드시 일본 토종이라고 볼 수는 없다. 네덜란드 등 서구 해양문화권에서 출발한 건축 양식이 근대기의 일본에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구룡포에 남아 있는 마찌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내·외부를 상세히 조사해본 결과, 일식 목조건축이 때로는 한옥 양식, 때로는 중국의 양식과도 섞이면서 그 어디에도 없을 독특한 변형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건축 양식에는 기본적으로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뒤섞인 유전자 풀이요, 경계가 없이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문화자산이기 때문이다.
근대 건축물, 그리고 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도 그래서 엄연히 우리의 땅, 우리의 자산이다. ‘토종’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다양성’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프라하가 동유럽의 보석으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는 것은 전통 양식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유럽과 다른 세계를 잇는 길목에서 스쳐가는 여러 문화권의 건축 양식을 흡수하면서 도시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전통과 다양성의 조합은 오늘날 프라하를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독특한 곳으로 펼쳐 놓았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좋고, 열혈 애국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미 힘을 잃고 소멸해가는 근대기의 건축물이 투쟁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 이들을 복원한다고 해서 그 앞에서 절하며 일제를 그리워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요, 또 헐어버린다고 해서 어두운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목포가 되었건, 구룡포가 되었건, 각자 지역에 남은 근대의 흔적들은 그 자체로 존중되었으면 한다. 반일을 외치기에 딱 좋은 소재, 지역 경제를 위한 마중물이 아닌, 그저 너무도 빨리 사라져가고 있는 역사의 한 흔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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