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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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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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하던 빈티지기 시기에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개머리얼 하딩’이 재임 중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 당시 부통령이었던 캘빈쿨리지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3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평소 말이 없고 잠이 많기로 유명했던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부패관리들을 축출하여 국민들에게 공직의 신뢰를 회복시켰다는 호평을 받아 이듬해 선거에서 다시 재선된다. 변호사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는 초일류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고매한 인품의 정치인이었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경제에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그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음 선거에 불출마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정치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퇴임하고 6개월이 지나자 검은 목요일로 시작된 경제대공황이 덮치고 미국 국민들은 오랫동안 전시상황보다 더 어려운 경제암흑기를 고통 속에 보내야만 했다. 캘빈 쿨리지는 재임시절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세금을 쓰는 것이다. 공금은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그가 경제에 무지했다는 그 말은 정말 틀림없었던가 보다. 세금은 분명히 주인이 있다. 바로 국민이 주인인 것이다.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가장 적확하게 사용되어야 할 돈이 세금인 것이다.
금욕주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돈에 관해 언급한 말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재산이 많은 사람이 돈 자랑을 하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보기 전까지는 그를 칭찬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자들 중에 돈이 많다는 그 자체로 존경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진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칭송을 받기도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돈의 쓰임새가 한 사람에게도 이러할진대 국민의 피땀이 스며있는 세금의 쓰임새에 대한 중요성을 두 말해 무엇할까! 세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납세의무자와 조세부담자가 일치하는 직접세와 조세의 부담이 타인에게 전가되는 간접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예년의 경제성장률과 비교하면 세금이 서너 배는 올랐다. 특히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너무 올랐다. 월급봉투가 얇아지는 직접세는 국민의 반발을 살 우려가 크지만 소주한병, 과자 한 봉지에도 붙어있는 간접세는 국민들이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간접세를 많이 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가가 돈을 많이 쓰는 까닭에 세금이 이처럼 야금야금 오른 것도 문제이고, 배포 큰 씀씀이도 우려스럽지만 정말 염려되는 건 세금을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만들기에 54조를 썼지만 대부분 단기성 알바에 치중되었고 그 엄청난 돈은 효과도, 흔적도 없이 먼지가 되어 버렸다. 이 정부는 특정단체나 조직에서 집단 반발하면 무조건 세금을 퍼붓는다. 일례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에 대해 소상공인들이 반발하자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을 흩뿌렸다. 눈먼 돈이 된 이 세금은 유령사업주의 지갑으로 흘러 들어갔고 심지어는 신청도 하지 않은 업체에게 떠넘기기까지 하였다. 보다 못한 한 사업주가 세금을 이렇게 막 써대도 되느냐고 따지기까지 하였단다. 벤처창업자원 지원은 더욱 기가 막힌다. 조그만 사무실에 전화기만 갖다놓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벤처기업으로 등록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억 원을 준다.

그에 더해 최저임금의 과속상승은 국민들의 반발을 더욱 고조시켰다. 물론 근로자의 더 나은 삶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속도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사용한 조총의 탄환은 둥글둥글한 구슬이었다. 그 구슬이 총구 속에서 화약의 폭발로 속도가 빨라지자 가슴을 꿰뚫는 살상의 총알이 된 것이다. 왜 문재인 정부는 국내연구기관과 IMF의 경고까지 무시하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세금으로만 덮으려고 하는가?
최근 정치권은 많은 갈등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야당에게 하루빨리 국회로 들어오라고 압박한다. 그 압박의 목적은 추경이다. 추경을 통과시켜 꼬여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의도이다. 그런데 추경의 세목들을 보면 많은 비난을 받았던 54조원의 사용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 식이라면 마른사막에 물 몇 바가지 붓는 거나 마찬가지다. 가시적인 효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옮겨 심은 나무를 살리려면 뿌리에 물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념과 포퓰리즘에 치우친 가지와 줄기만 바라보는 관념을 먼저 내려놓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그래야만 나라가 보이고 미래에 대한 혜안도 뜨여 한 푼이라도 아껴 이 나라의 뿌리를 살리는데 알뜰하게 쓰지 않을까! 혹시 이 정부는 탄핵의 혼돈을 딛고 탄생한 정권이었기에 우리는 무언가 확실히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조바심을 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젯밤 강변을 함께 걷던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야 20년 쯤 되었나! 젖먹이 우리 아들 등에 업고 셋방 구하러 다니다 지쳐 주저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그때 밤하늘에 별들이 참 많았어. 비 온 뒤라서 그런지 하늘도 참 맑고 별들도 많아. 꼭 그때 본 하늘같아.” 그때가 언제였는지 언뜻 생각나지 않아 기억을 더듬다가 나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한창 일해야 할 30대에 경제가 추락하여 기업은 줄도산하고 일자리는 없어져 생활비조차 없어 허덕거리며, 인플레로 물가는 치솟는데 돈의 가치는 자꾸 하락하고, 금리는 20%대로 치솟아도 대출은 안 되는 고통과 절망 속에 한없는 미안함으로 나는 검은 아스팔트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아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던 것이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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