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김원봉이 한국사회를 흔들다
  • 모용복기자
죽은 김원봉이 한국사회를 흔들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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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빛나는 독립운동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해방 후 적대국 부역자이기도
 
정부·정치권의 섣부른 언급
색깔론·국민분열만 부추긴 꼴
약산의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지인(知人) 중에 지독한 ‘김원봉 예찬론자’가 있다.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 으레 일제강점기 약산(若山) 김원봉의 광복군 활약상과 무용담을 꺼내든다. 그가 김원봉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일제가 그를 잡기 위해 김구보다 현상금을 훨씬 많이 걸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김원봉에 대해 잘 모른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라면 몰라도 김원봉에 대해선 배운 바도 들은 바도 별로 없다. 역사라면 남들 몇 마디 할 때 한 두 마디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가졌다고 자부하지만 김원봉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국사시간에 그가 책에 나왔는지 아닌지도 가물가물하다. 나만 무지(無知)한 게 아니어서 술자리에서 김원봉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데 그것은 곧 파장(罷場)할 시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김원봉은 우리에게 관심 밖 인물이다.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해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운동가이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광복 이후 행적 때문이다. 임시정부 군무부장 자격으로 귀국한 후 자신이 추진하던 좌우합작이 거부 당하자 월북해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다 1958년 김일성 체제 강화에 비판적이었던 연안파가 숙청될 당시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북한에서의 행적으로 인해 비록 걸출한 독립투사이지만 김원봉은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금기(禁忌)어가 됐으며 반 세기가 넘도록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약산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2015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된 영화 ‘암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영화 ‘밀정’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 ‘이몽’에서는 주인공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의 입에서 ‘김원봉’이란 이름 세 글자가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보수-진보를 떠나 국민통합을 통한 사회발전을 강조하면서 김원봉이 만든 조선의용대가 편입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화(發話)가 끝나기 무섭게 정치권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끌벅적했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가뜩이나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불만이 많던 터라 일제히 공격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잇단 막말파동으로 수세에 몰린 한국당은 지도부를 비롯해 너도나도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 정권 수립에 영향을 주고 6·25 전쟁 때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을 북한군의 남침에 맞춰 싸우다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현충일에 언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한 발언이 되레 국민분열을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라는 데서 아쉬움이 남는다. 보수진영의 공격도 정쟁(政爭)의 냄새가 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도 시의적절했다고는 볼 수 없다. 김원봉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비록 최근 들어 그의 독립운동 행적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긴 하지만 보수진영에선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보수-진보 통합을 말하면서 굳이 김원봉을 언급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김원봉에 대한 공(功)과 과(過)는 언젠가 재평가 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태동할 당시 대혼란기에 이념의 대립으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온전하게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학자의 몫이요, 먼훗날의 일이다. 약산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하기 위해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38선 철책이 낮아져야만 그 평화의 길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섣불리 정부나 정치권에서 약산을 소환해낸다면 국론분열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재평가할 기회마저 앗아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현충일 추념사는 그 발언의 진의(眞意)가 무엇이든 부적절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정치판이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시국에서 보수언론이나 보수진영이 묵인할 리 만무하지 않는가. 공격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의 조급증이 오히려 약산의 발걸음을 늦추게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권도 더이상 김원봉을 정쟁거리로 삼아 갑론을박을 삼가야 한다. 비록 한 때는 적대국의 부역자로서의 삶을 살았다해도 그는 분명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위인이다. 일제 치하에서 동포를 핍박하고 일제에 동조하는 행위를 일삼으며 애국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친일파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은가. 이념과 진영을 떠나 후일 역사가 그를 재평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한 처사다. 특히 나 같은 문외한은 더 이상 김원봉 논란을 듣고 싶지 않는 것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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