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에서 황리단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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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에서 황리단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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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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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경북도민일보] ‘○리단길’ 열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서울 경리단길이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뜨면서 시작된 이 현상은 망리단길, 송리단길 등 서울에 몇 개의 유사품을 만들어내더니, 이제 지방 곳곳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웬만한 도시라면 하나쯤은 있는 지경이다 보니 전국에는 30개가 넘는 ○리단길이 나타났다고 한다. 경북만 해도 대구 봉리단길, 문경 문리단길, 경주 황리단길이 이미 알려져 있고, 포항에도 효자시장인근에 ‘효리단길’을 유행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한 장소가 유명해지면서 그 이름이 마치 브랜드처럼 활용되는 경우는 자주 있어왔다. 하지만 유명한 상권의 이름이 마치 복제품처럼 전국적으로 퍼져가는 이런 현상은 특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의 한 글자에 ‘리단길’을 붙이는 이러한 작명 방식은 마치 돌림자를 쓰면서 ‘나는 경리단길이랑 형제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리단길들은 명칭뿐 아니라 내용상으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업종과 분위기가 유사하다. 작고 개성적인 카페, 이국적인 음식점, 디자인숍 등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 가게만의 개성적인 품목과 인테리어는 필수이다. 중심상권을 주름잡는 프랜차이즈 카페 등은 적어도 여기서는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또한 상권의 위치가 유사하다. ○리단길은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지 않는다. 중심지가 아닌 오히려 약간 외진 곳이 제격이다. 저층 주거지, 시장 주변, 철도로 고립된 동네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품목도 입지도 기존 상권과는 다르다. 독특한 ‘힙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프랜차이즈와 대형상점에 질린 젊은 층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중심에는 역시 모바일 통신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뜬 멋진 카페라면 굳이 도심이나 중앙동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는 것이 모바일 세대의 모습이다. 해시태그를 통해서 맛집을 찾아내는 이들에게 ‘먹자골목’은 기성세대 식의 식상한 장소가 되어버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해시태그가 붙은 ‘#○리단길’이라는 명칭은 그들을 만족시킬만한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브랜드이다. 이렇게 모바일 문화는 ‘목 좋은 상권’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의 황리단길은 이러한 현상의 수혜를 톡톡히 받은 곳이다. 한때 대릉원 사이를 지나가는 도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국의 젊은이들이 좌표를 찍고 오는 장소로 변했다. 소셜미디어에 인용되는 횟수로 보면 전국 3위의 ○리단길에 해당한다. 다른 ○리단길에 비해 업체 수가 적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경주에 유적뿐 아니라 젊고 ‘힙‘한 감성도 있다는 것을 잘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리단길은 이처럼 도시를 새로 건설하지 않아도 이전보다 넓고 풍부한 장소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리단길 현상의 문제점과 한계도 분명하다. 한때의 유행이 아닌 의미 있는 장소 자원으로 과연 자리 잡아갈 수 있을까? 회의적인 의견도 많다. 아니나 다를까, 맡 형격인 경리단길에서 쇠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중심상권을 피해 멀리 나갔다 해도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임대료 상승이라는 운명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러다 보니 그 형제들의 운명도 그리 안심할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역 정체성과 관계없는 명칭의 등장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서울의 지명을 본뜬 황리단길이라는 명칭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역사성, 장소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불만도 이유가 있다. 사실 경리단길이라는 명칭도 한때 육군경리본부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관습적인 명칭일 뿐, 지역성과는 거리가 멀다. 원본도 정체성이 모호한데 복제품까지 등장한 상황일 수 있다.
○리단길 현상의 이면에는 이렇게 새로운 시대의 도시문화라는 긍정과 의미성이 결여된 유행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유행을 잘 활용하되, 그것이 본질을 대체하지 않도록 하면서 지속가능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행이건, 복제품이건 간에 그 속에서 무엇을 살리고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울의 경리단길이 해결해줄 수 없는, 결국 지역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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