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두얼굴’ 로또
  • 모용복기자
‘야누스의 두얼굴’ 로또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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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던 이익 얻게되면
더 큰위험 감수하는‘공돈효과’
로또 또한 공돈효과의 함정
땀·노력·돈 가치 아는 이에겐
진짜 인생역전 황금빛 미래가
인생한방만 꿈꾸는 한탕주의자
빚쟁이·사기범 비극적 결말이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어릴 때부터 돈만 쓰며 놀기만 했던 부잣집 아들이 부모가 죽자 많은 재산을 차지하게 됐다. 날마다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등 돈을 쓰기만 하다 보니 그 많던 재산도 점점 줄어 마침내 살던 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중에 한 푼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그가 걸친 외투가 전부였다.
추운 겨울이 닥치자 두툼한 외투 덕에 다행이도 얼어죽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머리 위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드디어 봄이 왔다고 생각하고 외투를 팔아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또다시 한파가 몰아닥쳤다. 그가 덜덜 떨며 길을 가고 있는데 길가에 제비 한 마리가 얼어죽어 있는게 아닌가! 철을 모르고 너무 일찍 찾아왔다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한 것이다. 그는 제비 때문에 자기가 얼어죽게 됐다고 한탄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재산이 많을 때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의 동화다. 또한 쉽게 얻은 재물은 쉽게 나갈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이것이 공돈효과(空─效果, house-money effect)다. 이 말은 도박꾼들이 큰돈을 땄을 때 공짜로 얻은 돈이라 여기고 이전보다 더 큰 돈을 배팅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연히 이익을 얻게 될 경우 이전에 하지 못했던 위험성이 높은 일을 행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공짜 돈이기 때문에 소중함을 모르고 잃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함부로 쓰기 때문에 결국 모두 탕진하고 만다는 것이다. 쉽게 들어온 돈이 쉽게 나간다(easy come, easy go)는 것은 이러한 이치에서 비롯된 말이다.
공돈효과의 쉬운 예로 로또에서 수 만 원 이하 당첨금은 대개 다시 복권을 사는 경향이 있다. 적은 돈으로 더 큰 이익을 보려는 사행심리와 공돈이라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만한 돈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해 선뜻 로또에 던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부산에 있는 한 주점에서 상습적으로 금품을 훔친 30대 절도범이 검거됐다. 그런데 이 남성은 알고 보니 10여 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된 적이 있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찰에 따르면 2006년 로또 1등에 당첨된 당시 20대이던 남성은 당첨금 19억원 중 세금을 떼고 받은 돈 14억 원을, 일부는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돈을 도박, 유흥비 등으로 마구 물쓰듯 한 나머지 8개월 만에 몽땅 탕진했다고 한다. 억대도 아니고 자그마치 10억 원이 넘는 돈을 일 년도 채 안 돼 어떻게 다 쓸 수 있는지 나 같은 서민들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첨금을 모두 탕진한 그가 금은방, 편의점을 돌며 물건을 훔치다 구속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부산과 대구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식당과 주점 종업원을 상대로 절도행각을 벌이다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단체예약 선불금을 받아오라고 속여 밖으로 유인한 뒤 담보 명목으로 받은 금목걸이, 금반지 등 귀금속을 챙겨 줄행랑을 치는 수법으로 16차례에 걸쳐 3600만원 상당을 절도한 혐의다. 한 때 로또로 인생역전의 기회를 맞았지만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한 탓에 오히려 상습 절도범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로또가 인생을 망친 경우는 이 뿐만 아니다. 로또복권 사상 두 번째로 많은 1등 당첨금을 거머쥔 50대 남성이 불과 5년 만에 당첨금을 탕진한 경우도 있다. 소액 주식투자로 빠듯하게 살던 그는 2003년 로또 1등에 당첨됐다. 당첨금은 무려 242억 원. 세금을 제하고도 189억 원이나 되는 거금(巨金)을 수중에 넣었다. 그는 이 큰돈으로 강남에 있는 고급아파트를 사고 병원 설립과 주식 등에 투자를 하다 5년 만에 돈을 몽땅 날리고 오히려 1억 원이 넘는 빚을 떠안는 신세가 됐다.
빚쟁이 신세가 된 이 남성은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자신을 펀드매니저라고 속이고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접근해 선물투자금 1억 여 원을 받아 가로챘다. 로또 1등 당첨금 원천징수영수증과 고급아파트 매매계약서 등을 보여주며 상대가 의심을 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무일푼인 그가 피해금액을 갚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2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거머쥔 그가 불과 몇 년 만에 빚쟁이와 사기범이 된 것이다.
요즘 들어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노동을 하고 땀을 흘려 돈을 버는 대신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손쉽게 돈 벌 궁리만 한다. 주식, 블록체인, 로또 등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평생 동안 자신들이 꿈꾸던 인생역전을 펼쳐보지 못할 것이다. 설령 운이 좋아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 해도 그것을 놓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진감래, 苦盡甘來)’는 격언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다. 그래서 쉽고 편한 일자리만 찾아다니다 보니 취업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취업난, 실업난의 많은 부분이 이로 말미암은 바가 적지 않다. 땀 흘려 일한 뒤에 갖는 잠깐의 휴식이 달콤하고 배가 고플 때 먹는 음식이 더욱 맛이 있듯이 고생하지 않고 번 돈은 소중하게 다가올 리 없다. 그래서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로또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열배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백수건달에게는 백배의 아픔을 안겨주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아닐까?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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