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도시, 물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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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도시, 물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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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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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경북도민일보] 지역 개발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업들은 참으로 많고 많다. 도시개발, 도시재생과 관련된 것에서부터 경관이나 디자인에 관한 것 까지 다양한 일들이 진행된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사업의 보고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바로 지역의 이미지 내지 정체성에 대한 분석이다. 지역이 가진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 시민, 전문가, 공직자들의 의견 청취는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빅데이터 분석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야단스러운 과정에 비해 결과는 대부분 뻔하다.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철강도시, 제철산업, 포항제철 - 사실상 동어반복일 수 있는 이 세 가지가 순서만 바꾸어가며 포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등장하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런 뻔한 결과가 불만스럽다. 단순히 기존 이미지를 확인하는 것이어서는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 정체성의 분석이라 하면 적어도 그 지역의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고찰이, 그리고 지향해야할 가치에 대한 힌트 정도는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에리히 프롬이 정체성 문제에 대한 핵심을 지적한다. 그는 현대인의 비극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 존재 자체가 아닌 직장, 자동차, 주택과 같이 자신이 소유한 ‘아이템’에서 찾으려 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바 있다. 우리는 지역 정체성에 있어서도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은 뒤로한 채, 지역이 ‘소유한’ 유력한 산업과 그 이미지가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논의를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도록 방치해온 것은 아닐까.   
물론, 포항에서 제철산업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저평가될 수 없다. 근대 이후 영일만 지역에서 철강산업의 발전만큼 중요한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세계의 경제와 산업구조는 우리 손을 떠나 예측 불가능하게 변해간다. 철강도시 대표 격이던 피츠버그는 의료산업 도시로 변모한지 오래이다. 자동차의 고향이라던 디트로이트도 이젠 다른 길을 찾아 허덕이고 있다. 산업도 경제도 머무르지 않는다. 결국은 흘러가고 변해가는 것이다. 입지 여건이 따로 없다는 4차 산업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보면 특정 산업이란 아무리 유력하다 해도 지역의 영원한 본질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 시기에 소유하는 아이템일 뿐인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지역의 본질을 찾고 개발하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포항에서 지역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 하겠다. 그 중에서도 ‘물의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업들이 주목할 만하다. 포항의 본질은 뭐니 뭐니 해도 물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도심 지척까지 들어와 있는 차고 푸른 영일만, 고대문명의 이동로인 형산강, 바다와 교류하던 다섯 개의 섬, 그것이 포항의 맨 모습이다. 물과 육지가 서로 섞인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그러다 보니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천연가스가 뿜어져 나오기도 하는 독특한 환경, 그것이 이 지역의 본질인 것이다.
사실 제철산업의 근본도 부두에 가득 쌓여있는 철광석이 아닌 영일만의 풍부한 물 자원에서 찾아야 한다. 차갑고 풍부한 물이 있어 세련되게 철을 정제할 수 있었고, 육지와 맞닿은 깊은 바다가 있기에 항만 개발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연오랑세오녀, 영열만 고래, 형산강의 용, 이 지역의 모든 전설에는 물이 등장한다. 물은 귀중한 자원으로, 때로는 지식의 경로로, 때로는 극복해야할 도전으로 다가와 이 지역의 본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곳의 물을 이용하여 제철산업이라는 현대의 전설을 쓰기에 이른다. 이처럼 물이라는 지역의 본질은 시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다른 스토리를 써가면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형성해온 것이 아닐까.
포항운하, 동빈내항 복원에 이어 최근 시가지 지하를 지나가는 하천을 복원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개발이 아닌, 지역의 정체성 회복에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사업이 이루어진 이후 포항 시가지 모습을 조감해 보니, 그린웨이와 바닷길,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하천이 마치 생물의 DNA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일변도라는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물과 숲과 바람이 통하는 지역의 새로운 DNA가 형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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