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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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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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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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이라…. 이건 뭐 생전 장례식이다. 우치다테 마키코가 쓴 ‘끝난 사람’이란 소설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주인공 다시로의 말입니다. 은행의 자회사 전무로 퇴직하는 다시로는 회사가 처음으로 기사를 딸려 내주는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직원들의 환송과 작별 인사를 받으면서 다시는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납니다. 회사가 이 세상의 전부인 이승으로 보면 장례식인 셈이죠.
다시로는 은행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임원 승진을 앞두고 밀리면서 그 길로 자회사로 옮기게 되고 직장 인생이 끝나버렸습니다. 어차피 이럴 것, 일류대고 일류은행이고 이 고생을 했냐는 회한만 쌓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퇴직 후에도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려 노력합니다. 물론 옛날 부하를 불러낸다든지 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새로운 길을 멋지게 살아보려 합니다. 다시로는 망설이다 구직센터를 찾아갑니다. 마침 조건이 괜찮은 곳이 있어 면접 보러 갔습니다. 70명 정도 된다는 회사였는데 사무실에는 8명 남짓 있었습니다. 대형은행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낮추고 자신을 써 주면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만 사장은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 자기 회사에 와서 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기술도 없는 일류대 출신은 쓸모가 없었습니다. 다시로는 모교인 도쿄대 교정을 방문해서 앉아 있다 펑펑 울고 맙니다.
주인공은 무얼 할까 고민하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은 법대를 나왔지만 학창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도쿄대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아내도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합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문학 강좌를 들으러 문화센터에 등록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일거리가 생기면서 대학원 진학은 무한 연기됩니다.
다시로는 문화센터 등록처에서 구리라는 여자를 만납니다. 63세의 주인공이 39세의 미혼 여성을 만났으니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끝난 인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로는 맛집이나 분위기 있는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삽니다. 구리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 갑자기 인생이 핑크빛으로 변합니다. 이것 역시, 결론은 헛물입니다. 둘이 술을 많이 마시고 택시 뒷자리에 탔는데 취중에서도 여자가 본능적으로 백을 둘 사이에 놓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시로는 술이 확 깼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구리가 잘생긴 처남과 사귀는데 둘은 만난 첫날에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다시로는 밥 잘 사주는 아저씨였던 셈입니다.

다시로는 아내의 권유로 피트니스에 등록합니다. 거기에서 젊은 벤처 사업가 스즈키를 만나죠. 사업가는 다시로의 인맥과 학맥을 높이 사서 자신 회사에 고문으로 초빙하고 싶어 합니다. 3일만 출근하고 넉넉한 보수에 방도 있습니다. 평균 나이 32.3세의 사람들과 일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즈키가 급사를 하면서 다시로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됩니다. 젊을 때 해보지 못한 회사경영을 한다는 마음에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수락합니다. 결과는 대참사입니다. 회사가 미수금을 받지 못해 파산을 하게 되고 다시로는 대표이사인 관계로 자신의 돈으로 은행 대출금 10억원을 상환합니다. 아내의 은퇴자금까지 날려버리게 되죠. 이 일로 아내와 사이가 나빠져 이혼 직전까지 갑니다.
아내는 가출하고, 회사는 파산하고, 은퇴자금 10억원을 날리고, 맘 설레게 하던 39세 아가씨는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느꼈을 그 고독을 이해합니다. 퇴직 후 사춘기 같이 방황한 주인공은 방향을 잡습니다. 나이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20, 30대에 할 일이, 60, 70대에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끝난 사람의 연령대에서는 아름답게 늙어가는 삶을 즐기고 찬미할 줄 알아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고향을 방문합니다. 거기서 학교 때 친구들을 만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라도 좋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머리가 뛰어났던 친구들도 고향에서 자원봉사에 가까운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걸 봅니다. 결국 아내는 도쿄에 남아 미장원을 하고 자신은 고향에 내려가기로 합니다. 연어는 고향에 돌아가서 죽지만 자신은 재귀할 거라고 믿습니다.
다시로의 아내는 현실적입니다. 남편이 49세에 은행 자회사로 갑자기 발령 나는 걸 보고 일찌감치 미용 기술로 자신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공주님들이 다니는 여대 영문과를 나왔지만 미용기술을 배우러 전문학교에 들어갑니다. 고향을 찾는 남편을 보고 여자들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향은 멀리 있을 때 그리운 거고 대도시에서 가끔 내려가니 친구들이 반겨주는 거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인공 다시로처럼 퇴직 후 사춘기를 앓는 것 같습니다. 10대 사춘기의 애들이 그 길을 걷듯이 퇴직 후에 좌충우돌하고 고독을 느끼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 노후 안착이 되나 봅니다. 다시로의 아내처럼 현실적으로 노후를 잘 준비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길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나이 들어가나 봅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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