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폭력은 미래 우리사회 자화상
  • 모용복기자
이주여성 폭력은 미래 우리사회 자화상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적 볼모로 우월적지위 악용
이주여성 폭행·학대 도 넘어
가정폭력 대한 솜방망이 처벌
파렴치·반인륜적 행위 키워
법 강화·관련제도 개선 시급
피해여성은 배우자 관계없이
영주권 취득할 수 있게 해야

 

10여 년 전 아내는 포항의 한 면단위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그 때 나도 몇 번 수업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근교 나들이에도 동행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 유난히 얼굴에 그늘이 짙고 표정이 밝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언젠가 아내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니 가정폭력을 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새벽 일찍부터 버스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공장에 나가 밤늦도록 일을 하고, 공장 일이 없는 주말엔 농사일까지 해야 하므로 예배나 한국어 수업에 거의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여성 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뿐 그 지역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들 다수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힘든 농사일과 가사노동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린다는 것이 아내의 말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해방구는 일요일에 있는 교회 예배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것인데 그나마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무렵 이후로 교회에 거의 간 적이 없어 지금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물론 아내에게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최근 한 뉴스를 접하고 불현듯 그 때 기억이 떠올랐다.

방송에서 본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30대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아내를 마치 샌드백을 두들기듯 손과 발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더구나 두 살배기 아이가 옆에 붙어서서 엄마가 맞는 모습을 보고 자지라지듯 울음을 터트리는데도 아랑곳없이 폭력은 계속됐다. 영상 속 폭행 장면은 2분여에 불과하지만 실제 폭행은 3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하니 남편의 잔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영상은 피해 아내가 기저귀 가방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촬영한 것으로서, 평소 남편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력에 시달려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폭력을 행사한 이유였다. 경찰 조사에서 이 남편은 “말이 안 통해서” “치킨 먹자고 했는데 베트남 음식을 해서” 등 부인이 맞을 짓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얼토당토않은 변명이냐”고 하겠지만 그로서는 꽤 당당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폭력을 저지른 쪽이 뭔가 구린데가 있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 들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곱씹어보면 꽤 당당한 이 폭력 남편의 망동에서 베트남 아내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즉 아내를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치킨 안 시켜 먹는다고 부인을 때리는 간 큰 남편이 어디 있나. 이 남편은 아내가 폭력 등 학대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결혼이주여성의 국적이 배우자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이주여성이 결혼을 한 뒤 귀화시험을 보려면 최소 2년 이상 국내에 체류해야 한다.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한데 남편은 국적 취득을 볼모로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며, 이로 인해 폭력을 휘둘러도 이주여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를 악용한 남편들의 파렴치한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제결혼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2만6000여건으로 2017년 대비 8.9% 증가하면서 13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전체 혼인에서 국제결혼의 비중이 10%에 육박하고 있다. 말하자면 요즘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이 다문화가정인 셈이다.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굳이 통계자료를 보지 않더라도 길거리에 나가보면 이러한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주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수 십 년 전에 머물러 있으며, 실질적인 보호장치도 없어 인권 사각지대에서 이들은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결혼이주여성들이 모두 불행한 한국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필자의 경험처럼 가정폭력과 학대, 힘든 노동, 가난 등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이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행(幸)·불행(不幸)이 사회적인 구조나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남편과 그 가족의 아량에 달린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것이 사람 마음인데 인자한 남편이 언제 폭력 남편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며, 또 그들의 비위에 맞추려다 보면 결국 주종(主從)관계로 전락해 떳떳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베트남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남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잇따라 제기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한국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박항서 감독 덕으로 상종가를 쳤던 주가(株價)가 폭력 남편으로 인해 다시 곤두박질 친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전국 보호시설 입소자를 대상으로 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 지원을 위한 제도마련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의문이다.

이주여성 가정폭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폭력을 멈출 방법이 없다.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해버린 남편의 반인륜적 행위를 엄벌하지 않고서 이 여성들을 구할 방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폭력에 대해 관대한 법은 폭력의 악순환만 되풀이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배우자에 의존하는 체류심사제도도 바꿔 가정폭력 등 학대에 시달리는 이주여성은 배우자와 관계없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또 다양한 지역사회 단체와 연계해 수시로 다문화가정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이주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한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다문화가정의 폭력을 해결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는 심각한 사회적 혼란에 빠져들 것이 틀림없다. 아이의 눈에 비친 아빠의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신음하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두 살배기 아이가 속절없이 당하는 엄마 옆에서 울어대는 장면을 보고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느꼈는가.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