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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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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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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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자도 어리석은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지금의 삶, 그 길 끝은 공평해
죽음을 자각하고 사는 자만이
완전한 현재·삶 채울 수 있어
한정된 시간 고귀한 순간들
더 사랑하며 열렬히 살아야
먼 하늘에 하얀 새털구름 흘러가고 굽이치는 산맥의 짙은 신록 끄트머리 절벽 아래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진다. 이 산천의 바위와 저 넓은 바다는 영속하련만 이 생명 언젠가는 물거품처럼 꺼져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 산마루에 홀로 앉아 또 하나의 주인 잃은 전화번호를 지웠다. 쓸쓸할 적마다 마음 기대던 사람이었다. 서로 만나 반갑게 악수하면 봄볕처럼 전해지던 따스한 그 체온, 아직도 내 핏속에서 식지 않았는데 너무도 황망하게 갑작스레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육신마저 재가 되어 떠나던 날에 눈물에 어리어 바라보던 하늘, 화장터 굴뚝에 희미하게 치솟던 연기도 바람 따라 가고 흩뿌려진 한 줌의 잿빛 유골은 쏟아지는 장대비에 씻겨갔다. 불과 사흘 만에 지상위에 남아있던 그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고 이제 내 가슴속에서만 아프게 머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이 길 끝에는 죽음이 있다. 창백한 죽음은 공평하여 가난한 자의 집에도 찾아들고 부자의 집에도 찾아들며 왕의 침실에도 찾아든다. 그렇다면 죽음은 생물학적 소멸일까?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 누군가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길을 모두 알고 온갖 생명체의 특성을 전부 안다고 해도, 우리가 모든 학문을 통달하고 불구자를 고쳐 일으켜 세우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도서관의 책들을 통째로 외운다 해도 그 또한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럼 영원히 산다면 행복할까? 만약 영원히 산다면 살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뒤로 미루어도 그만이고, 하지 않아도 그만이며,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기에 한없는 지루함만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

삶과 죽음이라는 이 대전제를 두고 고뇌하면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허무의 절벽에 천착하라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마주할 때 우리는 삶을 좀 더 내밀하게 숙찰하여 참된 본질과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완전한 현재에 살도록 만들어준다. 지금 살아있다고 해서 죽음을 망각하고 죽음을 외면하게 되면 현재를 소중히 여길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삶 속에 채워진 내용물이므로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삶을 알곡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고귀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만물이 서로 다른 것은 삶이요, 서로 같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서는 현명하고 어리석은 것과 귀하고 천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다른 점이요, 죽어서는 썩어 냄새나며 소멸하여 버리니 이것이 서로 같은 점이다. 태어나면서 생명이 시작되고 삶은 그 과정이며 죽음으로 비로소 삶은 완성된다. 그러니 더 사랑하며 더 열렬하게 살자. 우리는 모두 외롭게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산에 노을이 핏물처럼 붉다. 저 멀리 보이는 세상, 한 백 년 후에 남아 있을 자 누가 있으랴! 나 또한 언젠가 영별의 강을 건너 홀연히 떠날 것이다. 나는 공허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지막이 기도했다. /잡은 손 힘없이 떨어질 때/ 주고 또 주어도 더 못 주어 안타까울 것은 사랑이려니/ 모두 사랑하옵도록/ 이내 마음 다하여 사랑하게 하소서. 자줏빛 입술 파랗게 떨릴 때/ 두고두고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었던/ 미처 못 한 속죄를 구하려 할 테니/ 용서 빌고 관용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깃털 같은 눈꺼풀 천근 되어 내려올 때/ 텅 빈 삶 회억 되면 차마 감지 못하리니/ 살뜰하게 살아살아 감사로 영글게 하옵소서.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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