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구 문학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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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구 문학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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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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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호미곶 흑구 문학관
포항문협, 최근 도심이전 주장
이제서 떠받드는 속내 무엇
그가 사랑한 것은 구만리 보리
문인들, 흑구 성찰 우선돼야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태풍 다나스가 지나간 22일 포항 호미곶의 흑구 문학관.
잠긴 문을 열자 메케한 냄새가 묻어났다. 작가의 사진과 서적, 작품 설명을 담은 액자가 비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포항 문학의 태동기에 상당한 역할을 한 문인의 문학관으로는 초라했다.

본명은 세광(1909∼1979).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948년 포항에 정착해 포항수산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대표작 ‘보리’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보리가 지천으로 널린 호미곶 구만리가 탄생지다.

포항시는 2012년 5월 옛 마을회관에 흑구 문학관을 설립했으나 전시 내용물의 빈약, 극소수 관람객으로 방치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작품성을 떠나 대중적 인지도에서 수필가 한흑구의 이름이 그만큼 생소한 탓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은 물론 포항시민들조차 그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흑구 문학관의 도심 이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김민정 포항시의원이 “흑구 문학관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며 “접근성이 좋은 도심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포항문인협회가 문학관의 도심 이전을 들고 나왔다.

포항문협은 호미곶이 외곽이라 시민 접근이 불편하고 전시 내용물의 빈약, 운영 인력이 없어 방치되고 있다며 도심에 흑구 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학관은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작가의 명성이 최우선이며 작가 출생지 또는 집필한 곳, 작품 배경의 소재지에 문학관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외 문학관은 이러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문학관은 하나의 지역 명소이다. 지금의 호미곶은 과거처럼 많은 보리는 없으나 그래도 흑구의 정신과 작품 배경은 오롯이 구만리 보리밭이다.


지역의 한 시인은 “흑구 선생이 가장 좋아했던 곳이 구만리 보리밭이다. 작가가 즐겨 찾고 글의 배경·무대가 된 곳에 문학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부족하면 보충하고 개선하면 된다”면서 “호미곶에 있는 문학관의 도심 이전 주장이 의아스럽다”고 했다.

흑구 문학관 주변의 경관은 탄생을 자아낸다. 구룡포, 동해면, 호미곶면, 장기면은 빼어난 자연 풍경과 다양한 축제가 사시사철 열린다.

지역 특산물인 과메기, 돌장어·돌문어, 산딸기 축제와 유배마을 체험문화,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 일본인 가옥거리, 새천년 기념관 및 해맞이 축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포구의 선박 등은 타 지역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움과 정취를 품고 있다.
흑구 문학관이 이들 명소와 잘 엮으면 포항만의 스토리텔링이 탄생할 수 있다. 작가, 여행가, 관광객들은 혼탁한 도심보다 이러한 곳에 매력을 느낀다.

문학관의 도심 이전은 시민 공감대가 중요하다.
요즈음 문학관은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기능을 통합한 복합문화시설 개념인 라키비움(Larchiveum)을 지향하고 있다. 도심에 문학관 건립은 규모에 따라 수십억 혹은 수백억 원의 혈세가 소요되며 운영에 따른 비용도 상당하다. 겨우 100명 남짓한 회원을 둔 단체가 요구한다고 해서 선뜻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문인들은 흑구 문학을 시민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며, 문학관을 채울 작품 발굴 및 확보에 힘써야 한다.
시민들은 인지도가 낮은 작가, 빈약한 내용물의 문학관 건립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항문협의 반성도 있어야 한다. 명색이 문인인 그들이 지금까지 문학관의 방치에 있어 자유롭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이제와 무슨 염치로 흑구를 신줏단지처럼 모시겠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질 않는다.

접근성이라는 논리의 도심 이전 명분 뒤에 혹 문학관에 자신들의 사랑방을 만들 속셈이 아닌지 묻고 싶다.
흑구가 떠난지 40년이 됐지만 작품과 그가 사랑한 호미곶 구만리, 그리고 보리는 남아 있다.
포항문협이 문학관의 도심 이전을 주장하기 앞서 무엇이 진정 흑구 선생을 기리고 위하는 것인지부터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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