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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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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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야마가타 Tightrope Walker를 들으며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오해의 산

사람은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까? 불가능하다는 답을 내린 시기가 있었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타인이 어떻게 해낼 수 있냐는 비관에서 비롯한 불능의 감정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어쩌면 이야말로 삶의 진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이보다 생생한 감정을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마음이 닫혔다는 사실이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낱 한 점에 지나지 않았던 나는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면서 전에 없던 표정을 발견하기도 했다. 곪아 있는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변하고 있었고 자라고 있었으며 좁아지고 있었다.

이국에서 여덟 번의 계절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면서 나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언어도, 어떤 영화도 어떤 사람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를 거부하며 이리저리 떠돌았고 내 감정을 곳곳에 이를테면 기차역 대합실의 커다란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버린 감정들이 소각되지 않고 산처럼 쌓여 간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나는 그 산을 올라볼 용의가 있다. 제법 험난한 산행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상심의 음유시인

레이첼 야마가타를 듣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 , 를 반복해서 들었다. 트램을 타면서 강가를 걸으며 조깅을 하면서 술을 마시며. 선율은 구름처럼 느리게 흐르고 감정은 빛처럼 들고 나길 반복했다. 복잡했던 내 마음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는 순간을 경험했다. 나른하게 내쉬는 숨과 느린 템포, 섬세한 연주와 절제된 목소리에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레이첼 야마가타의 단 한곡만을 들으며 하루 중 절반을 걷다가 지쳐 돌아올 때도 많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은 원래 타인과의 불화, 관계의 불능, 소통의 실패로 이뤄져 있으니 그 이해 불가능을 노래로 만들고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무력의 징조와 몰이해의 지점에서 그 외떨어짐의 정확한 응시를 기타로 피아노로 선율로 옮기고 있는 건 아닐까. 점처럼 끊어진 감정을 고스란히 오선에 두고 상심을 노래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노래라도 해야지만 살아낼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은 아닐까. 그녀 역시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건 아닐까. 이해 불가능의 감성 속에서 직관적인 슬픔을 터트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모든 음색이 표정이다.

몇 년이 지났다. 나는 긴 여행에서 돌아왔고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다소 규칙적인 인간이 되었고 사람들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변했고 더 이상은 자라지 않았으며 더욱 좁아져 버렸다. 이전과 다르다면 조금 상쾌해졌다는 것이다. 레이첼 야마가타는 그녀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유일하게 LP로 제작된 정규4집 는 외줄타기 곡예사라는 제목에서 명시하듯 여전히 위태로운 감정의 파장을 선보인다. 외줄, 타기, 곡예, 사. 그녀는 이제 감정을 더욱 잘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인다. 내부에 깊이 침투하여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짚어내려 하는 것 같다. 그건 이해의 측면일까, 오해의 측면일까. 목소리는 보다 짙어졌고 진솔해졌다. 그녀에게 가창력이란 지금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투명하게 드러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모든 음색이 그녀의 표정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시간이 지나보니 대답은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이해는 결국 불가능하다는 지점에 닿게 되더라도,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이 같은 물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걸로,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나는 천천히 생각해본다. 그 과정이 삶이라고, 삶이라고. 다만, ‘It’s gonna be hard, it‘s gonna be hard’ 낮게 읊조리는 레이첼 야마가타의 목소리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잘못 해석되어 내게 올 때면 가끔은 나도 이해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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