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에 대한 메르켈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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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에 대한 메르켈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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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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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이다. 과거에 어떤 일을 발생시킨 요인들이 대부분 그대로 있다.

한반도의 위치는 그대로이고 주변 나라들도 그대로다. 또 각 민족의 유전자는 지속된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사람은 바뀌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유지된다. 거기에 반복적으로 후천적인 교육이 행해진다. 그래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과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과오를 인정하고 그 파장에 대해 인간적인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되면 정치 지도자들이 그를 행동에 반영한다. 이로써 지정학과 민족적 유전자가 발휘하는 관성효과를 차단할 수 있다. 즉 과거의 불행한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48%가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인의 1%, 중국인의 4%만이 그에 동의한다. 사실 일본도 몇 번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번번히 미흡했고 타이밍도 맞지 않았고 모순되는 행동으로 희석되었다. 심지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인도 있었다. 1970년에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그런 광경도 물론 없다. 진심은 행동에 배어난다. 우리는 일본의 사과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양립되지 않는다고 본다.

일본 지도자들은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일본제국 80년을 부정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고 한다. 나치독일의 12년과 차이다. 그러나 2015년에 일본을 방문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일본의 아베 총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일본이 독일처럼 주변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역사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본은 사과를 하면 재무장이 어려워질까봐 사과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자식들이 2차 대전 같은 참화에 보다 쉽게 끌려들어 갈 가능성이 있는 헌법개정에 찬성할 리 없다고 보지만 일본 사람들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때문이다.

최근 일본이 우리에 취한 경제보복 조치를 보면 일본은 결국 변할 생각이 없었고 과거가 슬슬 반복될 조짐이다. 우리가 집요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국민들 같은 절박함이 없어졌다. 지정학은 변하지 않았고 주변국 국민들의 성격도 변하지 않았고 그네들의 힘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조금 성장한 것뿐인데 여기서 착각한 것이다.

남북관계도 답보상태다. 북핵 때문에 훨씬 더 나빠졌다. 나누어져 서로 싸우면서 이 지정학에서 뭘 바랄 수 있는가. 그 결과가 오늘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비행기를 띄워 기승을 부려도 속수무책이다. 어찌되었건 가장 친하다던 미국도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역사공부의 문제는 과거의 나쁜 것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전례에 따르면 마음의 부담도 낮아진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역사책에 나온다.

일단 일이 터졌기 때문에 누구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이긴 다음에 할 일이고 지고 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다. 누군가가 미워도 미뤄둘 일이다. 요즘 본의 아니게 바쁘신 이순신 장군이 누구 잘못인지 따지고 앉아 계셨던가. 무능한 임금과 조정이 일을 그르쳤다면 그 또한 모두의 책임인데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최소한 상대방 앞에서는 안 될 일이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상대가 예나 지금이나 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완력뿐 아니라 지력도 몇 수 위다. 우리가 보기에는 못마땅한 나라지만 자기들 ‘나름’ 충실하고 건실하게 국가를 운영해 온 나라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친구가 많이 필요하다. 그간 게을리 했던 것 같다. 우물이 커지다 보니 우물 안이 편안해졌다. 해외여행 많이 다닌다고 국제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대학 랭킹 20위권인 서울대도 국제화 랭킹은 200위 아래다. 외교안보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에서도 그렇다. 소재 국산화라는 국제분업의 원리에 반하는 갑갑한 얘기보다는 수입선 다변화가 전략적으로 더 타당하다. 이제껏 가까운 데 있는 편리한 나라와 주로 거래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았지만 이런 상황이 생기면 후회스러운 법이다. 돈이 좀 더 들고 더 불편하더라도 위험은 분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정권의 미래와 결부시켜서는 안된다. 누군가가 이 문제를 다음 선거 차원에서 생각한 모양인데 상황은 그렇게 한가하지 못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동아시아의 지정학은 변하지 않는다. 부단한 절차탁마 밖에는 답이 없다. 그조차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워낙 강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잘 마무리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안이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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