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의 마법이 사라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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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의 마법이 사라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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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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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
도시재생에 대한 대중 강연을 하면서도 막상 도지재생이 무어냐는 질문을 맞닥뜨리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보통 질문자들이 원하는 건 재생사업으로 당장 우리 동네, 우리 집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재생은 과거와 같은 개발 사업이 아니다. 그러기에 정해진 조감도가 나오는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재생은 특별한 정책인 것도 아니다. 재생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일상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들의 삶을 생각해 보자. 힘든 일과시간이 끝나면 가족과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며 운동을 하기도 한다. 가끔 휴가를 얻고 여행을 떠나 복잡한 삶의 고뇌에서 떨어져 있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를 ‘재생’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것이 없이 우리는 삶을 유지해갈 수 없다. 도시 또한 그러하다. 계속적인 재생이 없다면 도시는 사람들의 삶터가 될 수 없다. 불안하고 불편하며 더러운 곳으로 낙후되어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근본적으로 재생은 이처럼 자연스러운 유지관리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도시개발 사업의 한 유형처럼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가 두꺼비의 마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서 두꺼비는 항상 마법의 존재이다. 콩쥐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넣을 때 구멍을 메워주는가 하면, 전래 동요에서처럼 ‘헌집을 받아 새집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이 동요는 마치 수백 년 후에 한국의 재개발 시대를 예언이라도 한 것 같다. 재개발, 재건축 시대가 무엇인가? 헌집 하나가 마법처럼 새집으로 변모하던 시기였다. 목 좋은 헌집이라면 새집 두 채에 덤으로 상가 분양권까지도 얻게 해주곤 했다. 그야말로 두꺼비의 마법과 같던 재개발 시대의 모습이다. 이 마법에 우리 모두는 매료되었고 정신을 잃었다. 으레 헌집은 알아서 새집으로 재개발 되는 것으로 알곤 했다.

마법의 본질은 사실 우리나라의 급속한 지가 상승이다. 좁은 나라에 갑자기 산업이 흥왕하면서 무역수지가 0을 하나씩 늘려가는 속도로 성장한다. 작은 면적에서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토지의 가치는 올라간다. 토지 위에 올린 집들이 아무리 낡았다 하더라도 이를 다 뒤집고도 남을 만큼의 가치가 토지에 새로이 부여된 것이다. 헌집을 공짜로 새집으로 바꾸어주던 것은 사실 마법이 아니라 토지 가치의 상승일 뿐인 것이다.

문제는 이제 두꺼비의 마법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헌집을 내놓으면 새집은 언감생심이고 건축비, 리모델링비 청구서가 날아올 뿐이다. 지방 곳곳에는 이미 빈 집, 빈 건물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아직도 이전 시대에 머무르는 것 같다. 재생사업을 앞둔 지역에는 ‘경축, 재생지구 선정’과 같은 플랙카드가 붙는데, 이는 과거 재개발 승인을 받은 지역의 모습과도 너무 유사하다. 혹시 우리는 아직도 두꺼비의 마법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시재생을 또 다른 재개발 사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시기에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헌집을 공짜로 새집으로 바꿔주는 재개발의 마법은 긴 역사 속에서 잠시 반짝했던 현상에 불과하다. 이제는 마법에 대한 기대를 접고 빨리 현실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도시재생은 마법이 아니다. 땀을 흘린 만큼만 나아지는 사업이다. 도시재생 사업에 특별한 것이 없다. 주민공동체 재건, 상권 활성화, 청년 경제활동 지원, 도시 예술문화 증진, 도시재생에 흔히 등장하는 사업들이지만 어느 것 하나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마법이 횡횡하던 시대에는 우리가 그 가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던 그런 사업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야 제대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법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삶터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도시재생은 그래서 개발 기법이라기 보다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시대정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재생 시대에도 두꺼비의 다른 마법은 필요하다. 애타는 콩쥐를 위해 밑 빠진 독의 구멍을 메워주던 그 따뜻한 마법 말이다. 도시재생 정책이 바로 이런 두꺼비의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한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활로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지역민들을 늘 관찰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기가 막히게 나타나서 돕고 문제를 해결하는 두꺼비가 있으면 좋겠다. 터무니없는 개발 계획보다는 지역민들과 비전을 공유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사업이 되면 좋겠다. 그것이 오늘날 도시재생이 지향해야 할 모형이 아닌가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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