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환한 순결한 마음
  • 경북도민일보
작고 환한 순결한 마음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9.0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돈 맥클린의
오성은 작가(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강사)
-죽음 뒤에 남겨진 것

나는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고 영원을 긍정하거나 기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가까운 사람들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서 크게 멀어지진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버렸고,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 분명하기에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죽음의 세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철이 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말해선 안 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수긍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나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끝끝내 상대해야 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말이다.

요즘 부쩍 되살피는 단어가 있다. 추모다. 내게는 쓰임이 불분명한, 오직 낱말로만 존재하는 단어였는데 이제는 죽음의 반대말이 생명이나 인생이 아닌 추모에 가까워져 버렸다. 추모의 형식이나 그리움의 감정이나 모두 죽은 자들에게는 무방한 단어겠으나(그렇지 않은 단어가 뭐가 있겠는가), 남은 자들에게는 그 의미가 각기 다를 것이다. 그렇다. 추모는 남은 자들을 위한 단어이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단어이고, 개별적인 차원의 단어이며, 또한 보편적이다. 이곳과 저곳의 고리이자 경계이자 분리인 추모에는 언제나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깃든다.



-빈센트 반 고흐를 따라서

돈 맥클린의 ‘Vincent’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지만 가사의 의미나 곡조의 분위기를 음미하게 것은 그보다 십여 년이 지난 후다. 나는 내 스승의 여행길에 동행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남프랑스의 아를을 거쳐 파리로 돌아오는, 빈 센트 반 고흐의 족적을 따라가는 테마 여행이었다. 이런 기획으로 여행을 한 것은 처음이었고, 유럽행 역시 처음이었기에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등의 극적인 사건은 알고 있었지만 반 고흐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몇 주 동안 그의 그림을 찾아보고, 공부를 한 후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한 예술가의 내면을 화가가 지낸 도시의 풍경을 통해 직접 확인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여행에는 분명 마음의 양식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붙들려 있었다. 그것이 추모라는 것은 한참이나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자화상>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와 <해바라기> 등 그의 그림은 무엇이든 마주하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거닐었던 길이나 광장, 카페, 다리나 밤하늘은 특출한 풍경이 아니었다. 벽이 노랗고 테라스가 넓은 아를의 멋진 카페 앞에서도 그의 그림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는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닌, 풍경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오직 그만이 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고자 한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광기에 둘러싸여 비극을 맞이한 그를 위한 노래가 있다. 서정적인 기타 연주 속에서 돈 맥클린이 ‘Starry, starry night’이라고 부르고 나면 거짓말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숨어 있던 별들이 총총하게 솟아오른다.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하지만 난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어요, 빈센트. 이 세상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만나본 적 없고, 동시대를 경험하지도 않은 사람을 향한 이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그의 도시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은, 사람들은.

내가 향했던 여행의 끝에서 나는 스승의 마음과 돈 맥클린의 노래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십년이 지난 지금 오래된 음악을 꺼내들으며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를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야 만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쓰기란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는 스승의 말을 생각한다. 돈 맥클린의 ‘Vincent’가 오직 빈센트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사람과 죽음 사이의 텅 빈 공간에 별이 들어차 있다. 저 어두운 밤하늘을 촘촘히 밝히는 작고 환한 순결한 마음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