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던 ‘대구 미대마을 3·1운동’ 재조명
  • 김무진기자
묻혀있던 ‘대구 미대마을 3·1운동’ 재조명
  • 김무진기자
  • 승인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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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유일 마을단위 독립운동
동구, 기념비 세우고 功 기려
지난 15일 열린 대구 동구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대구 동구청 제공

3·1만세운동 당시 대구지역 유일 마을 단위 3·1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졌다.

18일 대구 동구 ‘미대마을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건립위원회’ 등에 따르면 광복절을 맞아 지난 15일 미대마을 앞 체육공원에서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기념비는 1919년 4월 26일 및 28일 미대동 여봉산에 올라 만세운동을 펼친 채봉식·채희각·채갑원·채학기·채경식·채명원·채송대, 권재갑 등 8인 애국지사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건립됐다.

미대마을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26일 채갑원·채희각·채봉식·채학기 등 청년 4명이 채갑원씨(당시 26세)의 집에 모여 오후 10시쯤 미대동 동방 여봉산에 올라 다음날까지 만세운동을 벌인 운동이다. 이어 같은 달 28일 밤에도 1차 운동에 참여한 4명을 비롯해 채경식·채명원·채송대, 권재갑 등 4명이 합세해 총 8명의 애국지사들이 함께 여봉산에서 만세 시위를 펼쳤다.

이들 애국지사들은 이 일로 일본 군경에 의해 붙잡혀 일본군 헌병대로 압송됐다. 그해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은 독립만세를 외친 주동자 4명에게는 징역 8월, 하루 동안 만세를 외친 4명에게는 징역 6월형을 각각 선고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이들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이에 올 2월 3·1운동과 지역에 애착이 많은 11명이 뜻을 모아 이들의 공적을 재조명하고자 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다. 건립위는 관련 자료를 모으고, 심의 등 여러 준비를 한 끝에 지난 6월 대구시로부터 건립사업 허가를 최종 받으면서 기념비 건립 결실을 맺었다. 이와 함께 동구지역 애향 및 애국 자원봉사단체인 ‘광복소나무사랑모임’도 지난 2월 미대마을~여봉산 정상 약 2km 구간을 ‘여봉산 독립만세운동길’로 명명한 뒤 기념비 건립에 맞춰 길 안내석을 설치하는 등 힘을 보탰다.

이상호 기념비건립위원장은 “이번 기념비 제막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을 시민들에게 전파하는 좋은 계기가 만들어졌다”며 “앞으로도 대구시민들이 이들 8인의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 및 충절 정신을 본받아 나라사랑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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