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밀정의 시대
  • 모용복기자
신(新)밀정의 시대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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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때 밀정의 운용
KBS 탐사취재결과 드러나
밝혀진 인원만 900명 달해
일제에 독립활동 정보 넘겨
독립운동 심각한 타격 입혀
밀정의 시대는 현재 진행형
청산되지 않은 역사 속에서
호의호식 누리며 주류 형성
독립유공자로 둔갑하기도
밀정청산을 위한 노력 필요
 

출근을 하기 위해 주차장에서 차문을 열다 말고 손길이 멈춘다. 문 손잡이에 가느다랗고 하얀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거 언제 쳐졌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차 손잡이에 거미줄을 칠 정도라면 아주 작은 거미일게 틀림없다. 내가 밤잠에 빠져 있는 사이 그 놈이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며 공사를 벌였던 게 분명하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 정성이 놀랍다. 그런 이들이 있기에 어제 아파트 마당에 쌓인 쓰레기더미가 오늘 말끔하게 치워졌을 것이며, 불 나간 가로등이 다시 화단의 꽃과 나무를 환하게 비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늦은 귀가 후 아무렇게나 주차했다 다음날 어김없이 부착된 주차위반 딱지를 떼는 일은 성가시긴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새 바뀌는 것 중에 가장 큰 사건이 계절의 변화다. 연일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사흘 후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다. “덥다! 덥다!” 아우성치는 사이 가을이 벌써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거미나 사람의 숨은 노고(勞苦)든 속절없는 계절의 흐름이든 이러한 은밀한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 기쁨과 활력을 주지만, 동족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독립운동을 무력화시킨 은밀한 존재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밀정’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밀정’은 남의 사정을 은밀히 정탐해 알아내는 자(者)를 뜻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반대세력이나 집단에 정보를 제공해 도움을 주고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때문에 밀고자(密告者)라고도 할 수 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일제강점기 밀정에 대해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영화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조선인 출신 일본 고등경찰과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리더 사이에 펼쳐지는 암투와 회유 작전을 그리고 있다. 1923년 실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당시 조선인 일본 고등경찰이었던 황옥은 의열단 단원과 함께 중국에서 국내로 폭탄을 반입했다가 발각된 인물로서, 그가 의열단의 2차 거사를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심은 밀정이었다는 설과 일본 경찰에 침투한 의열단원이었다는 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그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밀정은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기 때문에 보이는 일본군이나 헌병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였다. 이들에 대한 운용과 활동은 매우 은밀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을사오적을 포함한 매국노, 일제에 부역하거나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들은 많이 발굴됐지만 밀정은 해방이 된 지 7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광복절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마침내 그 어두운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KBS가 친일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개월간 추적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일제가 밀정을 만들기 위해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치밀하게 작업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취재에서 확인된 밀정의 숫자는 무려 900명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중에는 1920년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비서이자 최측근인 이정,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거사를 치른 우덕순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우리 독립운동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만큼 독립군의 모든 정보가 일제로 넘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KBS 탐사팀이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기밀문서, 중국 공문서 등 5만여 장의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밀정의 운용은 크게 세 갈래로 이뤄졌다. 일본 외무성이 해외 영사관에 파견한 밀정,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운용한 밀정, 그리고 조선군사령부 헌병대가 군 차원에서 운용한 밀정으로,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해 일제 스스로도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니 한반도 전역, 나아가 만주와 중국지역에까지 밀정이 종횡무진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독립활동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제가 우리 독립운동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당시 이들에게 지급한 비용 명세서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밀정의 급수와 임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고정적으로 일하는 밀정의 경우 급여 명목으로 50엔이 지급됐다고 한다. 당대 최고 엘리트로 여겨지던 교사 초임이 45엔이었으니 일제의 식민지배 책략에 있어 밀정이 차지한 위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밀정들의 매국적 활동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 속에서 이들 대부분이 호의호식 하거나 심지어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우리 사회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백일하에 드러난 친일파들이 대중의 눈을 의식해 소극적인 친일행각을 벌일 때 밀정들은 오히려 사회 각계각층에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탈을 쓰고 겉으론 반일(反日)행세를 하며 안으로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는데 앞장서 왔다. 최근 일본의 보복으로 인한 경제전쟁 상황에서 이들(또는 후예)의 친일적 행각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KBS에 의해 드러난 밀정의 수 900명은 현재 외교지형으로 인한 취재의 제한성을 감안해 볼 때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할 것이다. 이번 보도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언론 뿐만 아니라 정부, 학계 등이 함께 힘을 합쳐 밀정을 색출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야 하며 아울러 그들을 청산할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밀정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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