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정신 이어받아 한일관계 격랑 헤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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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정신 이어받아 한일관계 격랑 헤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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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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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민주주의와 비폭력 평화의 정신이 빛난 독립운동이었다. 남녀 노소 신분 계급을 가리지 않고 수천만 민중이 참가한 3·1운동은 힘없는 조선의 백성을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게 한 획기적인 이정표이며, 일제로 부터의 자주독립을 위한 온 겨레의 하나 된 함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곳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했다. 민족 자결주의란 ‘그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원칙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호소할 좋은 기회로 삼았다. 또한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자극했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서거였다. 고종황제의 석연찮은 죽음은 나라 잃은 설움으로 일제에 짓눌려 있던 백성으로 하여금 민족적 의분과 울분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민족 대표들은 나라 잃은 슬픔이 극에 달하였을 때, 고종황제의 국장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서울로 모여들 것을 예상하고, 이 시기를 독립운동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하여 고종황제의 장례일인 3월 3일을 이틀 앞둔 3월 1일에 거족적인 민족 운동인 3·1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민족 대표 33인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서울의 태화관 앞에서 독립 선언을 낭독했고, 같은 시간 서울의 탑골 공원에서도 학생들과 시민들이 독립 선언식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우렁차게 외쳤다. 100년 전 그 당시, 거리에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 일본헌병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도 2천만 우리 국민들은 총칼 앞에 죽음을 불사하고 대한독립을 외쳤다. 과연 나였다면 일제에 맞서 용감히 대한독립을 외칠 수 있었을까?.. 잠시 생각을 해 보지만 선뜻 대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용기가 위대하고 자랑스럽다.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된 올해는 3·1운동이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가슴으로 느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을 역사적 사실로만 알고 머리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희생정신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본받아 앞으로의 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3·1운동의 정신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계승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국 정신이다. 100년 전 한마음 한뜻으로 조국을 지킨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직면해 있는 한·일관계의 과제를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북남부보훈지청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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