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민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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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민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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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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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 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것을 해결하려다 어이없게도 중요한 것을 그르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교각살우’라는 사자성어가 같은 뜻일 수 있다. 소의 뿔을 교정 하려다가 소를 잡는다는 말이다. 비슷한 상황에 쓰일 수 있는 말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이 아닐까. 본질을 간과하여 지엽적인 것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구더기가 징그럽고 더럽지만 그래도 모든 음식의 근간이 되는 된장은 담가야 한다.

경상도 지방에서 자주 들은 속담은 조금 관점을 달리 한다. ‘초가삼간을 다 태워도 빈대 죽는 것 속 시원하다’는 말이다. 없는 살림에 가진 것의 전부일 수도 있는 주거 근원을 실화로 태워 날리게 되는 상황에서 겨우 목숨만 건져 나와서 타 들어가는 초가지붕을 바라보며 문득 떠 올린 것이 빈대가 타 죽겠구나 하는 일말의 카타르시스 효과이다. 극단적인 불행 상황 속에서도 해학과 골계를 떠올리는 우리 민족의 재난 극복의 DNA일 지도 모르겠다.

‘빈대’와 ‘초가’라는 키워드는 같지만 위의 두 가지 속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빈대를 잡으려는 계획적 동기가 처음부터 있었느냐, 어이없는 실화로 재산의 마지막 보루인 집을 날리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빈대는 이나 벼룩과 함께 가난했던 시절 시민들의 삶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상징적인 존재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최근 상영되었는데 빈대는 단연 그 대표 급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목격하게 되는 현상들 중에서 본말이 전도된 경우에 이 속담이 자주 떠오른다. 법무장관 청문회를 앞두고 여야 각 진영이 거의 사활을 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가히 내전을 방불케 하는 촌극을 국민들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법무장관이란 우리나라의 법조계를 진두지휘하여 이 땅의 정의를 실현하는 선봉장이다. 법이란 모든 사람 앞에서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 자리는 한시도 비워 놓을 수 없는 최고 중요 관직 중의 하나이다. 그 사람의 능력이나 소신은 모르겠고 자식이 왜 불공정하게 장학금을 받고 남들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학교를 시험 한 번 안 보고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여기서 ‘초가’는 사법최고의 수장 공백이 초래할 대한민국의 정의 구현이 될 것이며 ‘빈대’는 한 인간의 가족 전부를 몰살에 가까운 상태로까지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풀리게 될 개인적인 직성과 분노, 그리고 쾌감의 발산이다.

대일 무역 전쟁에 있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쪽에서는 무조건 일본 제품 안사고, 일본 여행 안 가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아베 수상님’께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있다. 마치 대학로 소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촌극들이 공공연하게 길거리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 공짜로 보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양 진영이 극을 치달리는 것 같아 안쓰럽다. 처음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나섰을 때 사실 초가집 화재는 모르겠고 빈대 태워 죽이는 상상을 하면서 쾌재를 불렀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5년간 대일 무역적자가 누계 90조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한 빈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3년 11월 12일 자 김철웅 칼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내전’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한국 정치가 내전적 상황이거나, 적어도 정신적 내전 상태로 가고 있다. 스페인 내전의 역사는 오늘의 한국 정치를 관찰하는 데 꽤 유용하다. 한국은 정치·경제·이념적으로 극도로 분열되고 있다. 이 두 개의 한국을 가르는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다. 험난한 민주화를 거쳤기에 현실에서 또다시 ‘타는 목마름으로’ 호출할 일은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던 그 민주주의다.”

진보든 보수든 대한민국이 어느 진영만의 나라는 아니다. 말없는 다수 국민들 매일 매일의 삶도 존중 받아야 한다. 빈대 태워 죽이겠다는 적개심에 못 이겨 자신이 살아야 할 초가집에 불을 지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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