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좀 더 멀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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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좀 더 멀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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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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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이영우 前 경북도교욱감
우리 마을에는 터줏대감 노릇을 하면서 마을 전체에 대해 하나하나 간섭하는 사람도 있고, 대식구이며 토지가 많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바로 옆집 사람은 손기술과 처세에 능해 항상 우리 집보다 앞서가서 한 때는 우리 땅을 모두 빼앗아 우리를 머슴같이 부려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집도 가족 모두가 열심히 일한 덕분으로 잘 살게 되어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그런데 요사이는 옆집과는 과거의 복잡한 일들로 인해 사이가 매우 불편하다. 지난날에는 속으로는 못마땅해도 겉으로는 친한 척하며 잘 지내왔는데 요사이는 양쪽 집 모두가 불편하고 어색해 하며 서로 욕하며 지내고 있다. 세계를 한 마을로 축소하고 보니 터줏대감이 미국이고 대식구를 가진 집이 중국이고 옆집이 일본이다.

우리 속담에 이웃사촌이라고 했다. 이웃이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들 때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이사를 갈 수도 있지만, 국가 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인 운명이다. 세월은 흐르고 역사는 남는 법. 역사를 보는 눈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날 고등학교 교과서에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이라는 이광수의 무정도 있었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훌륭한 시도 있었다. 그 당시에 교과서에서 배우고 가르친 내용들이 친일파의 작품으로 낙인이 찍혔다. 이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 한일 간의 살얼음 같은 잣대로 바라본다면 친일파를 미화하고 가르친 사람들은 난감하고 돌팔매를 맞을 일이다. 털려고 하면 먼지 안 나는 곳이 어디 있겠으며, 덮으려고 하면 못 덮을 허물 또한 어디 있겠는가?

미국에 가 보면 위인들의 동상과 공적비 추모비 등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매우 부러워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는 왜 저런 영웅이 없을까 하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미국의 위인들은 조그마한 결점도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는 특히 과거 일본과 관계된 조그마한 흔적들은 모두 찾아내 매도하고 손가락질 하며 잘라내고 있다. 요사이 우리가 직면한 일본과의 경제 전쟁도 이런 가치관이 쌓이고 쌓여서 나타난 결과다. 일본이라면 짜증나고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도 않는다고 다그치고 또 그렇게 여론을 형성해가니 국민들은 그 흐름에 함께 따라가고 있다.

뉴스를 보고 들을 때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부담스럽다. 북한을 생각하면 핵무기를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는 기분이고, 중국은 덩치를 앞세워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다. 지난날 무자비하게 사드 보복을 해 왔을 때 한 마디도 못하고 쩔쩔 매면서 당하기만 했다. 앞으로 사드보다 더한 일이 없다고 장담하겠는가? 미국은 허울뿐인 동맹인 듯 자꾸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오히려 김정은을 찬양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로 인해 김정은은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여 국제적 인물로 부상했으며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즉 동북아에서 새로운 스타가 되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갑작스럽게 작아진 듯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지난날의 역사를 끄집어내어 바로 잡아야 한다며 반일을 외치고 우리끼리도 친일파라 규탄하고 고함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속은 시원하고 후련할지 몰라도 남는 것은 무엇이며 무슨 이익이 있는가? 돌아온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고 있지 않은가. 그로 인해 한일 양국이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상호 비난의 수위나 국민감정은 양국이 원수 같은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7월 한 달은 나라 전체가 콩 볶듯이 야단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계속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국민들도 일본의 비열한 처사에 분노하다가 급기야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단일한 사건으로 국가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낸 적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우리가 국제 사회에 내놓을 자랑거리는 경제가 유일하다.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 놓은 경제 강국의 체제를 일본이 무너뜨리려고 하니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 국민이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관군과 의병이 한 목소리로 일본을 규탄하고 있다. 일본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죄스럽기도 하고 주위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라고 한다.

국제 정치는 냉정하여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1992년 중국과 수교 이후 한국의 수출 1위 중국, 2위가 미국이다. 정치적 체제와 이념에서 벗어나 경제적 번영을 위해 중국과 손잡은 것이 얼마나 잘 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일본과도 지난날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래를 보며 서로의 발전을 위해 좀 참고 냉정해지자.

뜨거운 가슴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특히 외교에는 일방적 승리가 없고 반드시 주고받는다는 원칙이 있다. 우리 민족끼리 잘 뭉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수출을 해서 먹고 사는 나라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 중국 다음가는 제3의 강국이다. 그리고 옆집이다. 경제와 기술력 그리고 문화적인 면 모두를 갖춘 무시하지 못할 나라다. 그런 일본을 우리는 왜놈이라고 비하하고 있다. 우리만 일본을 욕할까?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반한 감정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한다. 양국의 외교적 감정 때문에 80만이 넘는 재일 교포가 힘들어 하고 푸대접을 받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 관대하고 편리를 봐 주고 있듯이 이젠 일본에게도 그런 아량을 베푼다면 어떨까. 좀 더 멀리 보고 냉정해지자.


이영우 전 경북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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