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에 정치·경제는 올리지 말자
  • 모용복기자
추석 차례상에 정치·경제는 올리지 말자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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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방문한 서울 유명병원
의사와 대화는 몇마디가 전부
검사 한 번 받는데 세 번 방문
지방사람 서울병원 문턱 높아
이제 이틀후면 추석연휴 시작
고향은 돌아가 안식하는 곳
골치아픈 정치·경제 접어두고
가족·친지와 정만 듬뿍 나누길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의사)

“예 지난번 건강검진 때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그럼 CT검사 결과 보고 다시 얘기합시다”(의사)

“원무과에 가셔서 예약하고 검사 받으시면 됩니다.”(간호사)

“오늘 검사 받을 수 있나요?”

“오늘은 안 되고 다른 날로 예약해야 합니다.”(원무과 직원)



의사와 나눈 대화는 고작 두 세 마디가 전부였다. 동네병원에서 가지고 간 초음파검사 영상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영상자료를 왜 제출하라고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또 몇 마디만 묻고 검사할 양이면 전화로 초진(初診) 예약할 때 검사 가능한 날로 함께 하면 될 터인데 번거롭게 진료일 따로 검사일 따로 예약을 해야 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내는 두 사람 열차표를 끊었다. 한 사람 당 편도 5만원 약간 넘으니 왕복으로 20만원이 넘는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수도권에 비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단순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병원 문턱을 넘기도 전에 길에 뿌리는 비용이 이 정도니 명의(名醫)들이 모여 있다는 서울의 이름난 병원에 지방 촌놈이 치료를 받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죽을병이라면 또 모르지만.

포항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S병원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여. 담당의사와 나눈 대화시간은 30초가 채 안되었다. 의사 입장에서야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귀머거리 환자와 얘기해 봐야 별 무소득이겠지만 큰 맘 먹고 병원을 찾은 고객(아직 환자 이전 상태이므로)은 실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황당한 것은 당일 검사가 안 된다는 사실이며, 검사결과를 보기 위해서 진료일을 또다시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검사와 결과를 당일 할 수 있는 날로 잡아달라고 하니 11월은 돼야 가능하다고 하니 차라리 하지 말란 말과 다름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열흘 간격으로 이틀을 예약하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 ‘앞으로 절대 아프면 안 되겠구나’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미스매치 현상이 직장을 구하는 청년들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병원이 더 심할 줄이야. 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데만 세 번 병원을 찾아야 하니 그 다음 일어날 일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야 병원 몇 번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멀리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 큰 병원 한 번 방문하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지방 사람들은 지방에서만 치료를 받으라는 말인가. 선진의료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병원 문턱이 병동건물 높이만큼이나 높게만 느껴졌다.

이제 이틀 후면 추석연휴다. 수많은 귀성객들이 내가 탔던 KTX로, 또 자가용, 버스, 배를 타고 오랜 시간 걸려 고향을 찾아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내고 부모형제, 친척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요 희망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다 때로 힘들고 지칠 때 고향을 찾아 위안을 얻곤 한다. 심지어 흉악한 범죄자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곳이 고향이거나 부모 곁일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고향은 인간에게 있어 단순히 태어난 곳만이 아닌 궁극적으로 돌아가 안식해야할 존재가 아닌가 싶다. 몇 달 전 한 살인범은 경기도 양평에 잠들어 있는 부모 앞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이승을 하직한 일까지 있다지 않은가.

이번 추석 명절에도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과 길 위에서 보낸 시간만큼 기쁨도 클 것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가족들과 추억을 나누며 정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경제가 아무리 곤두박질치고 정치는 ‘개판 오분 전’이라 할지라도 고향 품에 안긴 시간만큼은 마음이 여유롭다.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연중 가장 살기 좋은 호(好)시절에 맞는 으뜸 명절에 얼굴 붉힐 일이 무엇이며 아웅다웅 할 일이 무에 있겠는가. 그러니 이번 추석에는 골치 아픈 정치, 경제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가족·친지간에 정만 한가득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오랜만에 만나 자칫 감정 상하는 대화 끝에 발길을 돌린다면 돌아오는 길이 갈 때보다 곱절은 더 멀게 느껴질 것이다. 고향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는커녕 되레 성질만 뻗치게 하는 곳이 된다면 너무 슬픈 일이 아니겠나.

아내와 여러 날 옥신각신한 끝에 성화에 못 이겨 찾아간 서울 유명 병원. 유명 의사에게서 들으나마나 한 몇 마디 말만 듣고 묻고 싶은 말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내려올 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과 돈 낭비는 그렇다 손치더라도 이 먼 데까지 몇 번을 더 와야 할지, 수술을 하게 되면 회사 일에 지장을 주지나 않을 지 온갖 번뇌망상이 차창 너머 전신주처럼 속도전으로 다가왔다 사라졌다. 할 말을 다 못하거나 속에 응어리가 맺히면 사람이 지치고 화병(火病)이 생긴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고향에서 불쾌한 대화나 소통의 단절로 인해 귀성 차 안에서 나처럼 이러한 처량감을 맛보는 일이 없기를. 하기야 고향을 어디 병원에 견주랴 마는.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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