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촛불
  • 모용복기자
두 얼굴의 촛불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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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도 생각과 행동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나
조국 반대 대학생들 촛불집회
‘공정과 정의가 죽었다’는 주장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본 결과
대다수 국민들 공감 얻지 못해
촛불집회가 정당성 얻으려면
‘반일 종족주의’에도 분개해야
촛불은 어둠 밝히기도 하지만
큰 禍 초래한다는 사실 새겨야

같은 것을 두고도 생각이나 행동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똑같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듯이. 눈비 휘몰아치는 만주벌판 누비며 일본군과의 일전(一戰) 속에 장렬히 산화한 독립군의 가슴 속에, 포탄이 쏟아지는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이름없이 스러져간 어느 학도병의 가슴 속에서 나온 피 묻은 태극기. 그리고 아베를 찬양하며 “일본 파이팅!”을 외치던 사람이 손에 든 것도 태극기였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란 말처럼 요즘은 자기 이익이나 목적 실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기를 서슴지 않는 세상이다. 가치관, 도덕관, 사회규범이 실종된 혼돈의 시대다. 아무리 독설(毒舌)을 내뱉고 매국행위로 대한민국을 난도질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애국열사들이 지하에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아노미(anomie)가 따로 없다.

2년 여 전 대한민국 전역을 불살랐던 촛불집회가 요즘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기(反旗)를 든 대학생들의 촛불집회다. 서울대총학생회는 지난 9일 세 번째 촛불집회를 갖고 조국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공정과 정의는 죽었다”며 “검찰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짓을 당장 중단하고 책임 있는 모습으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당초 조 장관 딸의 입시특혜와 관련해 불공정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지만 부인의 검찰 기소,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한 조 장관 가족의 검찰 수사가 이어지자 이제는 사회 정의(正義)까지 시야가 확대된 형국이다. 그런데 ‘공정과 정의가 죽었다’는 이들의 주장은 순진하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금 공정과 정의가 죽었다면 이전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불공정, 부정이 판치던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들불처럼 일어났던 촛불의 외침이 아직 귀에 생생한데 말이다. 그 촛불이 부정과 불공정을 불태운 자리에 다시 태어난 것이 현재의 문재인 정권이다.

현 정권은 지난 2년 간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어 달라는 촛불의 준엄한 명령을 얼마만큼 잘 이행했을까? 엄정히 말해서 경제정책에 있어선 낙제점 수준을 면하기 어려울 성싶다. 비록 추석연휴 직전 통계청 발표에서 취업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긴 했으나 아직도 많은 지표들이 경제의 난맥상을 가리키고 있으며, 서민들은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책실패(좀 더 지켜봐야할 사안이지만)의 문제이지 정권의 도덕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면 과연 조국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사적인 의혹들이 공정, 정의라는 이름으로 촛불을 들만큼 중요한 사안일까? 그러면 장관 후보자나 장관들의 부정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또 지금까지 그래왔던가.

학생들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국 장관이 예전에 SNS,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펼친 주장들과 지금 받고 있는 의혹들이 많은 부분에서 정면배치된다는 점을 들어 그의 표리부동한 이중성에 분노와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 물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표리일치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 장관 일가가 받고 있는 의혹들은 불법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난의 대상은 될지언정 장관 사퇴를 운운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 그는 더 이상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질서를 책임지는 수장이기 때문이다.

조 장관을 향한 잣대를 되돌려 적용해보면 그들의 주장은 정당성을 담보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선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 역시 공평하고 정당하지 못한 사적(私的) 이익에 근거하고 있다. 조 장관 딸의 입시특혜는 교육에 광분하는 우리 국민들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내로라하는 명문대에 어렵게 입학에 성공한 많은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조 장관 딸과 같은 일은 현재 우리사회 기득권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횡행하고 있는 편법으로서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말고 할 입장이 못 된다. 촛불이 기득권층 전체의 반성과 변화가 아닌 조 장관 일가에게만 향할 경우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서울대 3차 촛불집회에서 한 학생은 “과거 국민이 손에 든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지금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목소리가 왜 전국적으로 울려퍼지지 않는가”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공정사회’에 대한 그들의 외침이 최소한 국민 절반에게는 공허하게만 들리기 때문이다. 조 장관 가족의 행위는 밉지만 ‘그들만의 촛불’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 또한 곱지 않다. 최근 한 지방대 학생이 대자보를 내걸고 촛불집회를 비난한 이유도 촛불이 숲 대신 나무만 비추려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촛불집회가 내세우는 ‘정의’는 더 한심하다. 군사정권 이후로 위정자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한 정의사회 구현은 사실 화려한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겉으론 정의를 외치면서 속으론 전혀 정의롭지 못한 것이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현 정권이 과거보다 더 정의롭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면 이 정권을 향해 정의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촛불은 정의로운가? 조 장관처럼 그들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라는 매국적 저서에서 일제침략을 미화하고 강제징용, 위안부와 같은 천인공노할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이들의 인권과 국민들의 자존심을 땅에 패대기친 자(者)들에 대한 침묵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만약 대학생들이 ‘반일 종족주의’에 분개하고 조국에 울분을 토했더라면 촛불이 한층 빛을 발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이 왜 촛불집회에 동조하지 않는지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의 행동이 과연 정의로운지 반문해 봐야 한다. 그런 다음 30~40대들에게 가서 물어보라. 조국 장관 사퇴를 왜 목청 높여 주장하지 않는지.

배움의 단계에 있는 상아탑이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청춘의 주장이라고 해도 대의(大義)에 기반하지 않으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촛불집회의 정치색을 배제한다고 학생증을 검사하는 등 자체검열을 한다고 부산을 떠는 행위는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집회라면 누가 참여하든 무슨 상관인가. 정치색을 배제해야할 특별한 이유가 무에 있는가. 오히려 이러한 짓이 많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불공정함을 느끼게 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백안시(白眼視)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울대 촛불집회에 서울대생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에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반증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기적인 집회에 동조할 국민은 없다. 또한 촛불이 목적과는 다르게 일부 정치세력에게 악용될 소지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화(禍)를 부르는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새겨야 한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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